▲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필자가 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춘원연구학회라는 학술단체 일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다. 이 학회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춘원 이광수와 그의 문학을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본래 대학교에서 정년 퇴직을 한 선생님들이 주축이 되셔서 결성했고, 지금은 윤흥로 선생님께서 회장을 맡고 계시며, 이광수의 장녀인 이정화 교수도 힘을 보태고 있다.

춘원연구학회에서는 학술지도 내지만 뉴스레터라고, 소식지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틀이 완전히 잡히지 못해서 여러 가지 보완할 것이 많다. 몇 분들이 모여 뉴스레터를 어떻게 활성화 할 것이냐 하는 고민을 하다가 생각한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 학회에 관련된 분들을 인터뷰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 첫 대상으로 거론된 분이 서강대학교를 정년퇴직한 이재선 선생이다. 비교적 근년에 `이광수 문학의 지적 편력`(2010)이라는 저서를 내기도 했고, 또 1936년생으로 학계 원로이시기 때문에 첫 대상으로 손꼽힐 수 있었던 것이겠다.

그러나 나는 인터뷰를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선생님이 내신 저서를 화제 삼아 이야기를 나누면 되겠고, 또 뉴스레터 지에 실을 수 있는 내용이 원고지 분량 20매를 넘지 못할 것 같으니 한 30분만 인터뷰를 해도 필요한 원고량은 충분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질문지를 다섯 개쯤 만들어 보내드렸는데, 돌아온 답변이 의외였다. 이미 2,3년전에 출간한 책을 가지고, 그것도 그때 이미 춘원연구학회에서 소개한 적도 있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다시 인터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었다.

말씀은 편하게 하셨지만, 그 행간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뭔가 새로운 이야기도 할 수 있는데, 왜 이미 일단락된 것을 가지고 재론하게 하느냐는 불만 같은 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더 들어가 보면 나, 그렇게 한 권 냈다고 만족하고 쉬고 있는 사람 아니라는 자신감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부랴부랴 좀더 현재진행형에 진취적인 질문으로 수정해 보내 드리고 약속 된 날 점심 때 선생님을 뵈러 지도학생 하나를 데리고 나갔다.

필자가 준비해 간 첫 번째 질문은 `이광수 문학의 지적 편력`을 내신지 세월이 또 많이 흘렀다, 지금은 어떤 공부를 하고 계시느냐, 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준비했던 질문은 `이광수 문학의 지적 편력`을 통해서 무엇을 밝히려 하셨느냐 하는 것. 그러니 필자로서는 아주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던진 셈이고 또 그만큼 선생님에게 하실 말씀이 준비되어 있어야 할 어려운 질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출생연도로 보면 선생님은 이미 78, 9세의 학계 원로시다. 통상적으로 생각해서 공부가 빠르게 진척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연세시다. 그런데 웬일인가. 선생님은 필자의 질문 다섯 개에 A4용지 여섯 장 분량의 메모를 해갖고 나오신 것이었다.

지금 `테마틱스`라고 해서 한국소설의 주제학에 관련된 저술을 하고 계신데, 이미 2개월만 있으면 보통 책 분량으로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또한 고소설사를 쓰고 계시다고 했다. 예전에 개화기 소설사를 써놓은 게 있으니 여기에 이어 그 이전의 소설들의 역사까지 아울러 정리하시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소설사를 과거는 모르고 현재만을 아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우리 소설의 전통까지 밝게 살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저런 말씀을 듣는데, 나는 문득 이 분과 똑같은 연도에 태어난 김윤식 교수를 떠올렸다. 생각하건대 두 분은 학문의 류가 다른 분들이었다. 이재선 선생님은 영미 비평이론에 아주 조예가 있고, 김윤식 선생님은 일본문학 및 사상사에 밝으시다. 그러나 두 분이 통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두 분 모두 시간이 어떻게 흐르든 공부를 놓지 않는 분들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