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기쁨` 황동규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57쪽

▲ 시인 황동규

황동규(76) 시인의 끊이지 않는 시를 향한 열정이 열다섯번째 시집 `사는 기쁨(문학과지성사)`으로 다시 한 번 불씨를 지핀다. 이번 시집은 병들고 아픈 몸으로 짧기만 한 가을을 지나며, 다 쓰러진 소나무가 상처에서 새싹을 틔우듯, “벗어나려다 벗어나려다 못 벗어난” 사는 기쁨에 매여 있는 인생의 황혼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시집의 전체 분위기는 곳곳에서 터지는 상상력 넘치는 언어들과 상승하는 정신으로 오히려 삶의 생기가 가득하다.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장기 기증`을 의뢰받는 전화 통화에 “아직 상상력 난폭하게 굴리는 고물차 다된 뇌나 건질 만할까”라고 대응하고, 산책길에서 본 쓰러져가는 소나무가 틔워낸 새싹을 보고, “이렇게도 모질게 살아야 하나?”라고 묻지만, 그것은 어떤 회한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살고 싶어 그런 거 아냐./병들어 누운 몸, 살던 곳 빼끔 내다보기지`”라고 표현함으로써 꺼져가는 삶도 생명의 진행 과정에 있음을, 살아 있는 한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상처에 아린 살들 촘촘히 짚어가며 하나씩 꿰매다 확 터지곤 하던/저 아픔의 환한 맛”이 주는 `통증`을 달게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삶의 숭고를 표현한다.

“노년의 나이에도 이처럼 뛰어난 발상을 보여주는 시, 싱싱하게 살아 있는 비유적 이미지를 구사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정신에 대한 무섭고 즐거운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그와 함께 황동규의 시는 어디까지 상승할 것인가란 의문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그의 육체는 착지점을 찾는 곡사포의 포탄처럼 땅을 향해 하강하고 있을지 모르나 그의 정신은 하강곡선을 망각한 채 여전히 상승의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시는 정점이 곧 종점이 될 것인가! 이번 시집은 이 같은 의문으로부터 필자 역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_홍정선(문학평론가)

오늘은 오늘의 기쁨이 있어, “무언가 주고받으니 그냥 좋은 거다”

“이제 뭘 하지? 산다는 게 도대체 뭐람”(`뭘 하지?`)이라고 되묻게 되는 정년 이후의 삶은 독서와 산책, 친구들과의 단출한 여행 등 소소한 일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렇게 허락된 노년의 시간들은 삶에 숨겨진 신비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하루는 영하의 기온 탓에 베란다 화분을 데워주려 거실 문을 열어 젖혔다가 거실 바닥에 새겨진 난초 무늬를 보고 한 폭의 묵화가 그려진 이불을 상상한다.

20년 간 산 아파트 거실에서 처음 만난 그 묵화에 홀린 시인은 조용히 그 묵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워 보고 “느낌과 상관없이 `따스하다`고 속삭인다”(`묵화(墨畵) 이불`). 그렇게 만나는 허전하면서도 따스한 감각들은 산책길마다 담아오는 조그만 새소리들이나 겨울날 망향 휴게소에서는 눈 나리는 날 자신의 앞에서 휘청 넘어지는 여인의 머리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들과 눈인사 나누기 등과 같이 날마다 새로운 체험하게 하는 설레는 순간들이다.

이렇게도 새로운 삶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시인 일과를 훔쳐보노라면, 젊은 사람이 보기에도 샘이 날 정도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하루`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다. 시간의 더께가 쌓여 무뎌지고 고요하기만 한 세상, 세월이 만든 담백한 풍경 속에서도 시인은 생의 경이를 발견하는 기쁨으로 이토록 신이 나 있다.

깊은 안개 속을 걸으면

무언가 앞서 가는 게 없어 좋지.

발 내디딜 때

생각이나 생각의 부스러기 같은 게 밟히지 않는다.

(…)

다 산 삶도 잠시 더 걸치고 가보자. `안개의 끝`부분

“아직 술맛과 시(詩)맛이 남아 있으니”

귀는 쫑긋하지 않고 눈은 반짝이지 않는다. 몸이 스스로 알아서 에너지를 아껴 쓰는 늙고 아픈 몸이지만, 산책과 여행으로 가득한 시인의 일과는 지나온 눈꽃 “두고 갈 때 가더라도 한 번 더 보고 가자”(`눈꽃`)고 마음먹거나 “기쁨은 기쁨, 슬픔은 슬픔, 분노는 분노, 그 부스러기들이/아직 들어 있는 몸이 어딘데”(`맨가을 저녁`)라며 셔츠 윗단추를 풀어 세상의 기운을 느끼기에 바쁘다.

“용서 받은 것은 어둡고, 안 받은 것은 더 어”(`어둡고 더 어두운`)두울 수밖에 없는 생이지만 그러한 생이 주는 고통과 모욕에도 시인이 발견하는 이 사는 기쁨들은 “몸이여, 그대 처분에 나를 맡겨야 하지 않겠나”(`이 저녁에`)라고 읊조리게 하며 “미래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봄비에`) 가운데서도 꼭 불타는 캠프 파이어 같은 생이 아니어도 좋은, “이 세상에서 나갈 때/아직 술맛과 시(詩)맛이 남아 있는 곳에 혀나 간 신장 같은 걸/슬쩍 두고 내리지 뭐.//땅기는 등어리는 등에 붙이고 나가더라도”(`장기(臟器) 기증`)라고 말하는 시인의 하루는 탐욕 없이도 생의 충만함으로 가득하다.

`법사께서는 연로하신데 어디로 가십니까?`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가는 곳 물으신다면`부분

미래에도 이 거리에선

무언가가 사람의 발걸음 멈추게 할 것이다.

내가 없는 미래가 갑자기 그리워지려 한다.

`브로드웨이 걷기`부분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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