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편의 詩로 엮어… 겸손함이 오히려 가치를 빛나게 해

▲ 안도현 시인

올해로 등단 28년을 맞은 시인 안도현(52)의 열번째 시집 `북항'(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전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이후 4년 만에 만나는 시집이라 반가움이 크다. 총 63편의 시를 엮은 이번 시집은 안도현 시인의 시세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줄 뿐 아니라, 작금의 사회를 향한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안도현 시인의 시집을 기다린 많은 독자들의 기대에 값한다. 따로 부를 나누지는 않았다. 다만 “어선과 여객선을 골고루 슬어놓은 북항”(`북항')처럼 시집은 63편의 시를 그 자리에 가만 띄워둔다. 시집을 여는 `시인의 말' 에서 “~ 잘 되지 않았다” “~ 여의치 않았다” “~ 형편없다”는 말로 자신을 낮추었지만 그 겸손함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 일궈낸 것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시가 들어가는 자리에 제사처럼 씌인 글은 `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의 1연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의 사생활에 대하여/불꽃 향기 나는 오래된 무덤의 입구인 별들에 대하여/푸르게 얼어 있는 강물의 짱짱한 하초(下焦)에 대하여/가창오리들이 떨어뜨린 그림자에 잠시 숨어들었던 기억에 대하여”는 이번 시집의 정서를 그대로 아우르고 있다. 사소한 것들을 향한 따뜻한 울림은 안도현 시인의 시가 가진 큰 힘이다.

서시인 `일기'는 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여 이 시집에서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들, 독자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소소한 일상을 나열하고 마지막에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라고 끝맺는 이 시는 안도현 시인의 시적 태도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시는 문인들이 뽑은 2011년 최고의 시에 선정되기도 했다. “안도현의 시에는 은일자적 태도 속에서 삶의 적막을 제 집으로 삼고 다스리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삶의 태도는 곧 시적 태도와 구별되지 않는다”는 심사평에서도 드러나듯이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는,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생활을 하는 시인은, 제자리를 지키며 세상과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중요함을 알고 있다. 그의 시가 주는 울림의 진폭은 바로 그 경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소소한 일상과 “무엇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의 앞에 붙은 “그렇다고 해도”가 뭔가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의 속뜻은 앞에 비워진 한 행.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말을 빌리면 “짧거나 긴 성찰의 시간”이다. 그 비워진 한 행에 담긴 의미를 찾아나서는 것은 이 시집을 읽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나는 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했네”

그렇다면 시인은 무엇을 성찰하는 것일까. 하찮을 수도 있는 일들이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는 시인은, 그러나 “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어두운 것들은 반성도 없이 어두운 것이어서” 시인은 노래하지 않고, 한 줄의 침묵 속에서 혼자 성찰했을 것이다. 그 성찰의 간절함 때문에 “혀 자르고 입술 봉하고 멀리 돌아”(`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와 지금 여기, “북항”에 이른 것은 아닐는지.

이 어둠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간직했던 내면의 `붉은 눈'일 것이다. “부엌”과 “아궁이”처럼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번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말을 타고 달리는 불꽃과 말이 우는 소리로 익어가는 밥을 떠오르게 했고, “어두워지는 부엌의 이글거리는 눈”을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자신의 붉은 눈을 태우지 않”는 시절. “세상이 슬퍼도 분노하지 않”는 시인의 성찰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한 마리 짐승이 되어 크렁크렁 울자”

지극히 평온한 외관 아래 그 공격성을 숨기지 않고 있는 이번 시집은 한 편 한 편의 시가 저마다 시론으로 읽히기도 하거니와, 더욱 깊어진, 우리가 알고 있던 것 너머의 시인 “안도현”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같다.

“안도현의 새 시집에서 은유는 적중하기에 실패한 표적으로 자주 제시되나 시는 실패하지 않는다. 그들 실패담이 세련된 문체와 적절하고 울림 많은 리듬으로 쾌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하나하나가 현실의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하나씩, 미소한 가능성을 하나씩 확인해나가는 길의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시는 영원한 빛과 날마다 만나는 어둠으로 이루어진다”황현산(문학평론가)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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