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기 빨랫줄에 바지가 펄럭인다
한사코 바람을 미는 김씨의 두 다리
쉰 나이 다 되도록 쉼 없이 달리고 달린
바지에 밴 관성은 아직도 탄탄하여
제 힘껏 하늘을 당겨 스스로 길이 된다
오늘도 달려간 만큼 또 멀어질지라도
희망이라는 허공, 허공이라는 희망을 향해
소리쳐 달려 나가는 저 눈물겨운 바지 하나
옥탑방 앞 빨랫줄에 걸려 펄럭이는 바지를 바라보면서 시인은 인생의 절망과 고통과 어둠의 한 면을 읽어내고 있다. 쉰 나이 넘도록 삶의 중심을 혹은 그 주변을 끝없이 달리고 달린 바지가랑이. 그런 그에게 다가온 것은, 그가 쥘 수 있었던 것은 절망과 좌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저앉지 않고 그는 달리고 또 달릴 것이다. 희망이라는 허공을 향해, 허공이라는 희망을 향해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