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비처럼 휘어진 해안선과 바다가 연인처럼 속삭인다. 기슭마다 보랏빛 해국은 피어나는데 잘박이는 배 곁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부부의 가을은 포구에 묶여 있다.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강사 2리 바다에 보트를 내려놓은 청년이 가짜 미끼 루어를 준비해 시동을 건다. 유유히 내항을 빠져 나가 파도를 타는 조성식(29세)씨는 그야말로 `꾼`이다. 본격적으로 낚시에 빠진 세월은 4년 남짓하지만 그의 솜씨나 대상어를 대하는 마음 씀씀이는 예사롭지 않다.

“한참을 풀고 당기며 실랑이를 하다가 1미터 남짓한 농어를 올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손맛도 맛이지만 반가움에 입을 맞추고 사진을 찍는 기분도 좋구요. 놀라움과 부러움을 동반한 주변 반응 또한 은근히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무엇보다 그 묵직한 녀석의 둥근 두 눈과 제 눈이 마주쳤을 때 그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조성식씨는 포항에서 태어나 한 번도 포항 땅을 떠나지 않은 토박이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다닌 적이 몇 번 있지만 낚시와의 실질적 인연은 `이영수` 라는 친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친구는 어릴 적부터 오어사에 가서 붕어를 잡을 만큼 낚시를 좋아했다. 그를 따라다니며 지겹도록 고기를 잡았다. 어떤 날은 싸우고도 배를 타고 낚시를 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 한 마디 안하고 뜰채로 떠주면서도 기쁨을 표시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있어 낚시는 지금까지도 생의 교집합인 셈이다. 해병대 부사관으로 5년 남짓 근무하는 동안 바다와 보트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낚시를 좀 더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루어는 말이지요. 고기를 꼬시는 게 아니라 사람을 꼬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낚시방에 가면 그 화려함에 반하고 `아, 이게 잘 물겠다. 싶어 그것을 사게 되거든요. 한번은 3만 원짜리 루어를 하나 사서 이게 색깔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선언하고 껍질을 다 벗긴 뒤 검은색 페인트를 칠해 낚시를 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 날 다행히 운이 좋아 물고기는 많이 잡았지만 엉뚱하고 무모한 도전을 궁리하던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그는 친구와 바다로 나가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루어 낚시를 시작했다. 3여 년 전만 해도 바다낚시의 대부분은 방파제에서 새우나 기타 미끼를 사용하여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이었다. 외국에서 들어 온 루어는 처음 민물낚시에 주로 사용 되었으나 점차 바다낚시에 접목 되었고 현재 그 인구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루어는 오색찬란한 빛깔이 환상적인 물고기 모양의 가짜 미끼다. 독특한 모양의 주둥이는 물살의 저항을 받으면 움직임이 많아지는 특성을 가진 탓에 루어로 잡는 어종들은 공격성이 많고 성향이 동적인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배가 고파서 미끼를 먹는다기 보다는 까불까불하니까 거슬리니까 달려드는 것이다.

“호미곶, 구룡포, 양포 인근 바다는 굉장한 어군이 형성되는 보물창고였습니다. 루어를 이용해 정말이지 닥치는 대로 잡았습니다. 농어나 삼치는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으므로 돌아갈 때는 아이스박스가 넘쳤고 그것을 서로 가져가라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집에 들고 가면 어머니가 싫어하시고 남 주자니 고생해서 잡은 게 아깝고 말이지요. 부끄럽지만 그 땐 무조건 많이 잡는 게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낚시를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 풀러 간다고 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심리적인 요인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고기를 잡았을 때보다 못 잡았을 때 실력은 늘었다. 잠도 안 오고 온통 놓치거나 못잡은 물고기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안타까움과 호기심과 도전성이 맞물려 자꾸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낚시에 대해 좀 더 정보를 얻고자 `바다루어클럽`이라는 동호회에 가입했다. 회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다. 낚은 물고기를 둘러 앉아 함께 먹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무대는 한껏 넓어졌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잡은 물고기 사진을 올리고 경험을 썼다. 블로거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수 백 개의 덧글이 쏟아지고 루어 낚시에 관한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 자리가 어딘지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함께 출조하자는 이들도 생겨났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고가의 보트를 구입하고 장비를 챙겨 쉽게 바다로 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아쉽게도 낚시에 대한 기본예절은 챙기지 못했다.

“보트를 내리는 과정에서의 무질서와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대상어의 처리 과정이 그랬습니다. 무조건 바다에 나가 반드시 큰 것을 잡아야 하고 많이 잡아야만 낚시를 잘한다고 여기는 그것이 문제였지요. 포구엔 함부로 세워 놓은 차량과 마구 던진 쓰레기들이 즐비했고 어떤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에 커다란 농어를 열댓 마리씩 잡아 목을 따 바다를 붉게 물들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바닷가 마을 사람들에게도 바다에게도 그리고 물고기에게도 함부로 하는 꼴이 된 거지요”

그런 모습은 그와 친구들을 반성하게 했고 변하게 했다. 바닷속에 사는 멋진 녀석과의 조우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진정 낚시를 사랑하는 것은 `잡는다`의 개념을 넘어 `만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포획이나 힘의 과시가 앞설 경우 모든 상황은 험악해진다. 사냥꾼이 많아지면서 물고기들이 똑똑해지는 탓도 있겠지만 예전보다 물고기가 줄어든 이유가 자격없는 낚시꾼들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물고기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바다를 펼쳐 물고기를 읽고 난 뒤엔 필요한 만큼만, 나와 주변이 감사히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데리고 왔다. 근사한 녀석을 만나면 입을 맞추고 기념사진을 찍고 돌려보냈다. 아이스박스가 넘치도록 채우는 기쁨을 넘어서는 기분을 덤으로 낚은 것이다.

곧 파도가 칠 것이다. 파도가 크면 물고기들은 신나게 노닐 것이다. 그런 날은 배가 묶이고 낚시꾼들도 오지 않을 것을 읽는 탓이다. 태풍이 다녀가면 무너진 집을 짓고 새끼를 낳고 사냥을 하며 그들만의 질서를 다질 것이다. 농어가 놀고 삼치가 뛰고 무늬오징어가 지느러미 말갛게 흔들며 유영하는 저 바다, 바다가 곁에 있다는 건 축복이다. 대상어와의 근사한 만남을 꿈꾸며 그는 늘 바다로 갈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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