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극장가 작지만 빼어난 영화들 `눈길`

올여름 극장가는 그 어느 때보다 할리우드와 국내 블록버스터들의 기세가 강하다.

그러나 이런 블록버스터들의 틈바구니에서도 특히 굴곡 많은 여성들의 삶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지만 빼어난 영화들이 여럿 개봉돼 눈길을 끈다.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가까운 멀티플렉스 극장이 아니라 작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경우가 많다. 진한 감동을 위해 조금만 발품을 팔아보는 건 어떨까.

◇뚱뚱한 게 어때서?…`헤어드레서`

독일의 여성 감독 도리스 되리는 `파니 핑크`(1994),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2008) 등의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감독이다.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시선을 오롯이 담아내면서도 긍정적이고 밝은 힘을 불어넣는 연출 스타일이 특징이다. 이번 영화 `헤어드레서` 역시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살이 상당히 많이 찐 여자 주인공 `카티`가 온갖 역경 속에서도 자기애(愛)와 삶에 대한 긍정을 잃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다.

구김살 없는 카티의 미소는 보는 이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염시킨다. 또 뚱뚱한 여성, 나이 많은 이혼녀에 대한 사회의 편견에 맞서 자신의 권리와 의지를 당당히 표현하는 모습에는 박수를 보내게 된다.

영화에는 베트남 출신 불법 이민자들의 처연한 삶도 등장하는데, 카티가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이질적인 문화까지 포용하는 과정도 유쾌하게 그려졌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작품으로, 지난 14일 정식 개봉돼 꾸준히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 여성의 비극과 용서…`그을린 사랑` 캐나다 감독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은 한 여성의 삶을 관통한 처절한 비극과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용서하고 껴안는 위대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중동의 어느 지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여 주인공인 `나왈`은 가톨릭을 따르는 종족의 규범을 어기고 이교도 난민과 사랑에 빠져 임신했다는 이유로 남동생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고 아기를 낳자마자 고아원에 보내게 된다.

또 이민족·이교도 사이의 내전 속에서 평화운동에 가담하지만,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목격하고 전쟁의 원흉인 지도자에게 테러를 가해 감옥에 수감돼 성고문을 당하고 원치 않은 아이까지 임신하게 된다.

원작은 레바논 내전을 피해 캐나다로 이주한 극작가 와이디 무아와드의 희곡 `인센디스(Incendies)`란 작품인데, 빌뇌브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가 원작보다 더 여성적이다”라며 “여성들의 삶의 조건은 늘 나에게 깊이 영감을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전 메시지를 담은 라디오헤드의 노래 `유 앤 후즈 아미(You and whose army)?`로 시작되는 강렬한 도입부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야기의 전개, 소름끼치는 충격적인 결말까지 영화적 재미도 크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화제를 모았으며 시사회 등을 통해 호평을 이어가면서 지난 21일 개봉 이후 고작 14개 상영관에서 1주일 만에 1만5천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강인한 여성들…`사라의 열쇠`

프랑스 감독 질스 파겟-브레너의 영화 `사라의 열쇠`는 앞서 소개한 `그을린 사랑`과 닮은 점이 많은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를 배경으로 한 두 개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는 방식이나 이교도ㆍ이민족을 대상으로 한 무자비한 학살과 폭력의 역사를 다뤘다.

게다가 이야기의 중심인물을 모두 여성으로 설정하고 질곡의 역사를 관통한 강인한 여성들의 모습과 아무리 아픈 진실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다룬 것도 특징적이다.

`사라의 열쇠`는 2차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벌어진 유대인 탄압을 배경으로 했다. 독일군이 무차별적으로 유대인들을 잡아가던 시기에 10세 소녀 `사라`가 남동생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다가 결국 동생을 잃고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게 된다. 우연히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 기자 `줄리아`는 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서 있었던 비극적인 역사를 밝혀내기 위해 애쓴다.

어린 나이에도 비극적인 운명에 맞서 돌파하는 소녀 사라의 강인한 모습이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고 그 희생자들의 운명을 자신의 삶처럼 아프게 공감하는 줄리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오는 11일 개봉된다.

◇30대 여성 성장기…`심장이 뛰네`

한국영화 `심장이 뛰네`는 포르노 배우가 되려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얼핏 보면 성을 상품화하는 반(反)여성적인 영화가 아닐까 싶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여성 감독인 허은희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삶의 동력을 상실한 30대 여성 `주리`가 포르노 여배우에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사랑과 성장, 자아 찾기를 그렸다.

“요즘 그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영화는 초반에 찌질한 여주인공의 `수난`을 그리지만 주리가 자신이 고민하는 실체에 접근하면서 점점 어른스러워지는 과정은 많은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낼 만하다.

지난해 로마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을 비롯해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출품돼 호평받았으며 지난 28일 개봉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