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에, 새 미니음반 `키스` 발표

무게감에서 벗어났지만 꾸밈없는 노랫말 여전
“후배들 다양한 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파”

“그림 잘 그리는 방법요? 저도 몰라요. 그냥 그리세요.”

1860년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67세에 붓을 잡은 미국 여류 화가 그랜드마 모제스의 말이다.

싱어송라이터 강산에(본명 강영걸·46·사진)는 얼마 전 그랜드마 모제스의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이 말을 듣고 `창작에는 왕도(王道)가 없다`는 진리에 무릎을 쳤다고 한다.

강산에는 악보를 그릴 줄 모른다. 그러나 무턱대고 음악에 손을 댔다. 코드(Chord.화음)에도 무지해 `와그라노` `명태` `깨어나` 같은 `원 코드` 곡을 만들었다. 그는 “이렇게 만들면 어때”란 호기로 시작한 음악을 지금도 그 맛에 만들고 부른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서 무모함과 무지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최근 홍대 앞 카페에서 새 미니음반 `키스(Kiss)`를 발표한 강산에를 만났다.

그는 꽃분홍 노트를 펼쳐 이번 음반 작업이 남긴 `잔해`들을 보여줬다. 술 먹은 다음 날 연필로 끄적거린 투박한 가사들, 암호처럼 날아다니는 멜로디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상에서 불쑥불쑥 떠오른 악상, 가사를 노트에 적어둬요. 이처럼 창작의 `하우 투(How To)`에는 왕도가 없어요. `하우 투`는 스스로 시도하면서 찾아야 해요. 모자란 부분은 그 힘을 보태줄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되요.”

지난해 독립 레이블 `레코드 맛`을 차린 그는 홍대 인디 음악계 후배들과 어울리며 이들에게 귀기울였다. 후배들의 음악 맛은 그의 미각(味覺)을 자극했다.

밴드 골든팝스의 조호균이 조력자로 나선 그의 음반은 색다른 맛을 갖고 있다. 귀가 감지하는 변화는 아기자기한 사운드와 나긋해진 창법이다.

수록곡 5곡의 사운드는 그 스펙트럼을 종잡을 수 없어 재미가 있다.

첫 트랙 `그날 아침`에서 어쿠스틱 악기들이 옹기종기 자리하더니, 1980년대 디스코 풍의 `떡 됐슴다`에선 전자오락 속 `뿅뿅` 소리들이 휙휙 지나간다. 이어진 `잡 잡(Jab Jab)`에서 타악기 소리들이 `쿵짝 쿵짝` 전진 배치되더니 타이틀곡 `키스`에선 아늑한 여백이 느껴진다.

“`잡 잡`은 편의점에서 후배들과 술을 먹던 중 갑자기 북소리가 머리를 울리는 거예요. 그러더니 영화 `트랜스포팅`의 이완 맥그리거가 뛰는 장면이 떠올라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리듬을 쳐보라고 했죠. 그걸 음악으로 옮겼어요.”

사운드의 섬세함은 자연스레 성대의 떨림에도 변화를 줬다.

그는 “데뷔 이래 매번 지르고 내뱉는 창법이었는데 이번엔 최대한 마이크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노래했다”며 “조호균이 나를 훈련시켰는데 하루아침에 창법을 바꾸려니 애를 먹었다. 그런데 내 음색이 부드러워져서인지 여성 팬들의 반응이 좋더라”면서 웃었다.

이에 발맞춰 노랫말도 소소한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 그간 `…라구요`와 `태극기`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등의 대표곡에서 줬던 무게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꾸밈없는 노랫말 속 내러티브는 여전하다.

만취한 다음 날 후회의 심정을 담은 `떡 됐슴다`는 그 위트에 헛헛한 웃음이 나온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한지 며칠도 안돼, 떡 됐슴다 또 떡 됐슴다~”

`그날 아침`은 3호선버터플라이의 리더인 성기완의 시 `그날 아침`에 곡을 붙였다.

“우연히 연습실에서 발견한 시집에서 `그날 아침`이란 아주 짧은 시를 봤어요. `그날 아침`만 반복되다가 맨 마지막 `그날 아침 당신 집앞`이란 대목을 읽는데 숨이 턱 막히더군요. 10여 년을 알았던 성기완이 그런 시를 썼을 줄이야. 하하.”

강산에는 자신의 감성에 신선한 자극을 준 인디 음악계 후배들과 오랜 시간 상호 작용하고 싶어했다.

그는 “`레코드 맛`이란 레이블에서 후배들이 다양한 맛을 내는 음악을 하도록 큰 그릇이 되주고 싶다”며 “수익 생각은 전혀 없고 후배들이 많은 음악을 맛보고 세련된 미각을 가지면 그걸로 족하다. 난 이들의 음악 레시피를 통해 그 배움을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렸다.

“지금 대중음악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대형 기획사의 콘텐츠는 몇명의 전문 작곡가에게 의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10%를 차지하는 인디 음악계에선 1천 명이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느 곳이 더 풍요롭겠습니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