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 들어가는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밤늦도록 빗속에

천 가죽처럼 묵직하게 처진

고목들이 줄 서 있고

그 길에 가는 자를 못 비추는

무뚝뚝한 등이 서 있습니다

헌 세상 같은 밤이 차고에 들고

얼룩이 배어 있는 이마를

나는 핸들 위에 가만히 찍습니다

짧지만 진행됐을 사랑이었습니다

진흙수렁에 화단 한 평은 올렸을 사랑이었습니다

…. (시 의 일부분 인용 )

`너무 얇은 생의 담요`(2002)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은 밝고 생동감 있고 기쁨이 충만한 세계 속에 있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가 그리워하는 사랑은 어두움과 슬픔과 아픔의 길 위에 놓여있고 그 속에 녹아있다. 시 속의 화자는 그 어두움과 슬픔과 아픔을 걷어내 주지 못하는 존재이며 그래서 그가 기약하는 사랑도 어둡고 누추한, 닳아버릴 대로 닳아버린 헌 세상 속에 짧은 추억으로 놓여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나온 생의 여정과 그 속의 사랑을 돌이켜보고 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하루살이의 비행처럼 짧았지만 간절한 사랑의 결실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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