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어느새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예전에는 방학만 하면 아이들과 한 판 전쟁을 치르느라 방학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방학엔 세 아이 모두가 학교에서 실시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가해 바쁘게 보낸 탓에 잔소리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개학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의 학교는 방학기간에도 교사와 학생들로 늘 북적인다. 기초 학력 튼튼 캠프, 영어 캠프, 독서교실, 과학교실, 특기 적성 교실 등 학교별로 맞춤형 프로그램들이 쉴 사이 없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김천교육청이 기초학력 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중한 나와 특별한 너를 위한 자신감 충전`이란 주제로 실시한 `꿈 튼튼 희망 캠프`에 다녀왔다.

지난 7월 29일, 김천시 관내 초등학생 100명과 경북도립 청소년 수련원으로 캠프를 떠나던 날 여학생 한 명이 눈에 띄었다. 1박 2일 일정의 캠프였기에 참가자 대부분이 준비물이 든 크고 작은 가방을 가지고 왔는데 모 초등학교 3학년인 한 학생은 가방 대신 검은 비닐봉지에 준비물을 챙겨 온 것이다.

이 학생은 그날 밤 레크리에이션 시간에도 평상복 대신 잠옷을 입은 채 활동을 했고, 다음 날 실시한 산행에서는 신발에 들어간 모래를 털어 내느라 자꾸만 뒤처졌다. 분홍빛 예쁜 샌들을 신고 있기에 산에 오는데 왜 샌들을 신고 왔느냐고 물으니 “우리 선생님께서 사주셨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이 학생은 부모가 이혼한 후 조부모와 생활하고 있는 아이였다. 학습 부진으로 인해 오빠, 남동생과 함께 참가를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캠프 잘 다녀오라고 샌들과 잠옷을 선물해주었다는 것이다. 남동생과 오빠 것까지.

아마도 이 학생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그 샌들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예쁜 잠옷은 처음 입어보았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반 학생들을 위해 드러나지 않게 그들을 챙겨주는 교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가난한 제자를 위해 새 옷과 신발을 선물한다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학생의 담임선생님처럼 가정환경을 파악 후 자기 반 학생뿐 아니라 그 형제들까지 모두 챙겨주는 것은 특별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여러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1박 2일을 보내야 할 반 학생이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해진 신발을 신고 잠옷도 없이 낯선 곳에서 지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그 교사의 마음 씀씀이가 몇 날이 흐른 지금도 계속 생각이 난다.

언젠가 의학계에서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을 발견하여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엔도르핀의 4천 배 효과가 있다는 다이돌핀이 발견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것은 엄청난 사랑에 빠지거나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었을 때 또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등 마음이 큰 감동을 받으면 분비된다고 한다. 이 호르몬이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강력한 긍정적 작용을 일으켜 암세포를 공격하여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요즈음 필자는 검은 비닐봉지를 볼 때마다 교직경력 5년이 채 안 되는 이 학생의 담임교사가 생각난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캠프에 참가할 정도로 가난한 학생과 그 가난이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세심히 보살펴 준 담임교사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그때마다 내 몸속 어딘가에서 다이돌핀이 분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살다 보면 감동을 주는 사람을 만나 다이돌핀을 선물 받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아름다운 마음 씀씀이로 다이돌핀을 선물한 그 교사처럼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많아져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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