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는 참으로 많은 구호와 표어, 그리고 수없이 많은 무슨 날과 강조기간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바꾸어 말하자면 한국의 현대사는 구호와 표어와 운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가 언뜻 기억하는 구호만 하더라도 `산림 녹화운동`에서부터 `혼분식운동` `국산품애용` `새마을운동`에다 `자연보호운동` `사회정화운동` `의식개혁운동` `새 질서 새 생활운동` `바르게살기운동`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 또는 관변단체 주도하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만들어진 `운동`과 이에 따르는 갖가지 크고 작은 구호와 표어들을 쌓아 놓으면 아마도 사전에 버금가는 부피가 될 것이다.

구호와 표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뭔가 잘 안 되고 있는 일이 더 많다는 얘기다.

즉, 다시 말하면 자연보호운동 뒤에는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이, 국산품애용운동 뒤에는 외국 상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그리고 청탁배격운동 뒤에는 청탁하는 사람이, 바르게살기운동 뒤에는 바르게 살지 않는 사람이, 교통질서·거리질서운동 뒤에는 교통법규와 거리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환경보존운동 뒤에는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저축·절약운동 뒤에는 과소비를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벌어진 운동들이다.

이를테면 그동안 벌여왔던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외치고 벌여 왔던 구호나 운동만큼이나 우리 대한민국도 밝고, 맑고, 명랑한 그야말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지상낙원이 되어 있어야 할진대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도리어 그 구호와 운동에 버금가리만큼 혼탁하고, 무질서하고, 썩고, 병들고 부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물론 국민의식도 문제이겠지만 그 이전에 그 운동을 주도했던 정권이나 실세들의 도덕적 결함, 시민들의 자발적·실질적 운동이라기 보다는 관변단체들에 의한 형식과 겉치레적인 행사나 `일시적인 캠페인` 단순한 `구호잔치`로 밖에 머물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이라면 모이고, 외치라면 외치고, 가라면 가고…. 그리고는 며칠 지나고 보니 무엇을 하자고 앞장섰든 사람들이 스스로 실천하지 않는 모순을 보고는 `운동`의 가치와 의식전환의 필요성을 인식하기도 전에 그들에 대한 반감이 앞서고, 1년 365일, 달달, 연년이 계속되어온 구호와 운동은 이 같은 악순환 속에 `헛구호, 헛구호….` 급기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세상은 요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구호의 남발, 강조기간의 범람이 빚어낸 폐단을 들 수 있다. 즉, 구호나 표어가 범람하고 무슨 날, 무슨 강조기간이 많아지면 정작 우리가 가야 할 목표나 지향점에 대한 감각과 결의는 무디어지게 마련이다.

쉼 없이 흘러가는 삶의 시간을 무슨 날, 무슨 강조기간으로 토막 내어 단위화하고 `운동`이 일상화되면 정말 가슴에 새겨야 할 알맹이는 어디로 달아나 버리고 겉치레, 요란한 형식적 행사 구호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두고두고 다짐하고 실천해야 할 소중한 일들이 강조기간만 지나면 언제 그랬더냐는 식으로 깨끗이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우리네 습성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중병을 앓고 있는 한국병도 어찌 생각하면 구호범람이 빚어낸 폐단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두가 자각하고, 고쳐 나가고, 또 구호범람에 따른 감각의 무딤, 구호가 주는 수동적 인간화가 결국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드는데 구호와 각종의 관 주도 운동들이 일조를 했다면 이제 신물 나는 구호나 운동은 더 이상 없어짐이 마땅하다.

구호가 없는 세상, 이를 위해서 그동안 구호나 각종의 운동을 주도했던 세력들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솔선하여 모범을 보여야겠고, 또 이 땅의 민초들은 누군가에 의해 `무엇을 하자, 하지 말자`가 아닌 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잘못된 사고와 행동은 고쳐 나가고, 지킬 것은 지키고, 가꿀 것은 가꾸어 나갈 때 우리는 최소한 그 신물 나는 구호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 바탕이 주인의식이다. 주인의식은 바로 자율적 시민정신이며 누가 시켜서 마지못해 따르는 정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주인의식은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해 터득되고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요지경 세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상식이 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 일류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은 결코 종래처럼 관주도적인 캠페인이나 어깨띠를 두르고 구호를 소리높이 외치는 것으로 결실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범람했던 구호들이 `나부터 먼저`라는 자율적 시민의식으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 행동 속에 살아 움직일 때만이 결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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