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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에 머리띠 꽂고 어머니, 지팡이에 업혀 재 넘어 절에 가신다 혼자서는 쓸쓸하다고, 혼자서는 눈물겹다고, 초승달도 함께 가신다 연로하신 어머니, 하얀 머리카락 단촐하게 자르고 딸들이 꽃아 준 머리띠 하고 지팡이 짚고 절집 오르신다 어머니. 남편 일찍 여의고 아이들 다 떠나가버린 쓸쓸한 한 생을 마감해 가는 이런 어머니들이 이 땅에는 많다. 쓸쓸하고 눈물겨운 노년의 삶이 참으로 힘겨운 고갯길을 오르는 것 같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 외로운 길을 초승달도 함께 가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
등록일 2013.11.18
게재일 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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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감도는 자개무늬 목덜미를 어리숙이 늘여 빼고 어린 비둘기 길바닥에 입 맞추며 걸음 옮긴다 박카스 병, 아이스케키 막대, 담뱃갑이 비탈 분식센터에서 찌끄린 개숫물에 배를 적신다 창문도 변변찮고 에어컨도 없는 집들 거리로 향한 문 활짝 열어놓고 미동도 않는다 우리나라의 길을 따라서 샛길 따라서 썩 친숙하게 빛바랜 셔츠, 발목 짧은 바지 동남아 남자가 걸어온다 묵직한 검정 비닐봉지 흔들며 땀을 뻘뻘 흘리며 햇볕은 쨍쨍 보랏빛 감도는 자개무늬 목덜미 반짝 도시빈민들이 모여 가난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해방촌의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시이다. 그러나 가만히 음미해보면 평범한 순간을 세밀한 언어와 느낌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평범한 시가 아니다. 무정물의 사물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활기차게 생
시
등록일 2013.11.17
게재일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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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무척 깊어졌다 땀을 닦으러 잠시 숲 모퉁이 깊은 곳으로 들어서자 갓 피어난 산수유 한 떨기와 멀리서 개 짓는 소리가 산을 컹컹 울렸다 산이 깊을수록 먼 개 짖는 소리는 가깝다 한 자락 소슬바람이 지나쳤다 한 떨기 산수유가 파르르 떨린 것이 소슬바람 때문인지 개 짖는 소리의 컹컹 하는 울림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시인은 존재의 근원을 갈구하며 끝없이 맴돌고 찾아다니는 존재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시인은 끊임없는 방황과 모색의 길에 나선 존재이리라. 이 시 또한 그런 탐색과정의 하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인은 산속에서 갓 피어난 산수유 한 떨기와 만나기도 하고 멀리 개 짖는 소리와 만나기도 한다. 이런 만남을 통해서 시인은 이미 다른 어떤 곳으로 향한 걸음을 시작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시
등록일 2013.11.14
게재일 20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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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 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도가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머나멀어서 쓸쓸한게 아니라 쓸쓸해서 머나멀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 시를 접해야할 것이다. 주체가 쓸쓸하니 멀게 느껴진다는 말, 주체가 멀게만 느껴진다는 것은 주체가 있는 듯 없는 듯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기운이 어디서부터 나오고 어디로 빠져나가는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깊은 존재론적 회의에 빠지게 하는 시이다.
시
등록일 2013.11.13
게재일 20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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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가(生家)의 겨울 뜨락 내리던 달빛 수척한 내 비애의 장신(長身)처럼 한 그루 감나무도 아직 그렇게 있을까 지금은 여기 와 있네 수유리 종점 화계사 입구 십년을 견딘 변두리 내 주거(住居)의 이 좁은 뜨락을 싸늘한 달빛 내리고 있네 한밤에 혼자 일어나 그대를 다시 만나고 있네 불꽃같이 타올랐던 청춘의 시간들 위로도, 이제는 한 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시간들 위에도 달빛은 비치고 있다. 사랑과 문학과 혹은 사상과 그 어떤 소중한 생의 덕목 위에도 달빛은 비춰졌고 비록 번성하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어떤 것들이 시들고 소멸되어가는 과정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그 달빛은 변함없이 그것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시인은 깊은 마음의 눈으로 그 달빛을 바라보고 있다.
시
등록일 2013.11.12
게재일 20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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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손을 씻던 맑은 날들을 길어 내 언제 저렇도록 맹목을 위하여만 저무는 너의 유리창에 부서질 수 있을까 무섭지도 않느냐 어리고 가벼운 것이 내 정녕 어둠 속에 깨끗한 한 줄 시로만 즐겁게 뛰어내리며 무너질 수 있을까 온 하늘을 뒤덮으며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한 생을 살아온 자신을 들여다보며 회한에 젖어있다. 맹목으로 표현한 저 흰 눈들의 거침없는 투신을 바라보면서 한 생을 살아오면서 그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쏟아 부은 적이 있었던가. 나를 던져 즐겁게 무너져내릴 수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의 시간들을 한번은 돌아보게 만드는 시가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3.11.11
게재일 201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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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악기가 되지 어머니는 타악기가 되어 움직일 때마다 캐스터네츠 소리를 내지 아버지가 한 때 함부로 두드렸지 잠시 쉴 때마다 자식들이 신나게 두드렸지 석탄먼지 속에서도 쿨럭, 거리며 두드렸지 뼈마디마다 두드득, 캐스터네츠는 낡아갔지 이제 스스로 연주하는 악기가 되어 안방에서 찔끔 베란다에서 찔끔, 박자를 흘리고 다니지 평생 동안 남편과 자식들을 챙기고 키우느라 어머니는 헌신한다. 온 몸을 다 써버리는 것이다. 이제 연세가 높으신 어머니의 몸에서는 각종 신체의 부분들이 마모되고 기능이 저하되어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면서 소리가 난다. 시인은 그 소리를 캐스터네츠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땅 어머니들의 몸 어딘들 그런 소리가 나지 않겠는가. 오롯이 자기를 다 헌신해버린 빈 껍질 같은 통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시
등록일 2013.11.10
게재일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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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하리로 가는 비탈길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오고 있다. 남자는 한 손에 붉은 플라스틱 의자를 한 손에는 여자의 반신불수를 움켜쥐고 있다. 여자는 왼쪽이 무너지고 남자는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기우뚱 기우뚱 이쪽과 저쪽으로 무너진다. 남자는 기울어진 언덕을 그들은 이미 기울어진 기둥을 두 손으로 꽉! 버티고 있다. 그는 쉼없이 의자를 놓았다 들었다 하고 여자는 쉼없이 앉았다 걷다 한다. 그 때마다 무너진 몸이 흔들리고 붉은 플라스틱 의자도 함께 삐걱거린다. 아름다운 동행을 본다. 불구의 반려자를 위해 붉은 플라스틱 의자를 가지고 언덕을 오르는 한 남자의 절절한 사랑을 본다. 이쪽 저쪽으로 무너지며 여자를 부축해서 가고 있는 남자도 어쩌면 신체적 불구를 가진 사람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쉼
시
등록일 2013.11.07
게재일 201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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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밥이 언제 어떤 모양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아니 내 인생이 후반전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나 또한 매서운 겨울 맨몸으로 당당히 서 있는 이 배롱나무의 의연함과 아름다움을 배우고 결국 인간도 오뉴월 붉은 배롱나무 꽃이나 무성했던 푸른 나뭇잎처럼 때가 되면 순순히 떨어지는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머리 숙이고 말없이 콘크리트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내 연구실로 걸어가곤 한다 맞다. 인생이란 곱고 아름답게 꽃피우는 시절이 지나면 꽃은 지고 잎들은 시들어 떨어져 볼품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연구실 앞 화단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새봄을 기다리고 있는 배롱나무를 바라보면서 겸허한 생의 진리를 얻는다. 고개숙일 줄 아는 겸손하고 겸허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
시
등록일 2013.11.06
게재일 201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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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푸른 상처를 앓는 흰 선을 따라 바다가 하얀 이야기를 한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백사가 사는 푸른 거울 속 은반지 낀 여인이 먼 길을 가는 저 너머에는 눈 멀고 귀 먹은 짐승들이 사는 섬이 있어 그곳에 가야 하는데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눈 언저리에 눈물 아롱이는 하얀 섬이 방울 방울 떠 온다 나는, 아무 말도 적히지 않은 하얀 백지 한 장 둘둘 말아 허공에 건낸다 시인이 꿈 꾸고 있는 푸른 바다 밖의, 수평선 너머의 백사가 사는 세계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너머에는 눈 멀고 귀 먹은 짐승들이 사는 섬이 있다고 하는 거기는 어딜까.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그래서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거기는 어딜까. 거기는 실재하는 곳이 아니라 시인의,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욕망의 세계 혹은 이상의 공간이 아닐까
시
등록일 2013.11.05
게재일 201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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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을 뚫고 푸석푸석 일기 시작한 흙바람을 만 리 길 저 묵음의 피리 하나로 마중 나온 푸른 순 여리디 여린 사월의 뿔들 봐라 긴 병고 급경사 진 내 스물의 해안에도 우우우 투우로 우는 비린 사월 한 자락 그렇게 돋았다 꺾인 뿔의 그루터기 봐라 저기 외뿔 축축한 낮달로 숨은 꿈들 하늘소가 연한 뿔로 서로 눈짓하는 것을 오늘은 그리움으로 사월 언덕 가 봐라 꽃다운 청춘의 봄날 갑작스런 병고로 시작된 가혹한 추락의 날들에 만난 것이 시조였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이 시조에서 사월의 뿔, 그 여리디 여린 새 생명의 초록 불꽃을 본다. 숨은 꿈들을 품고 건너가는 하늘소의 연한 뿔에 감기는 사월의 바람과 그 생명 촉진의 기운은 시인을 소생시키고 다시 사월의 언덕을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시
등록일 2013.11.04
게재일 201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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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세 번의 고비가 온다고 했는데 한번은 은행 신축 공사장에서 철근 더미에 깔렸다가 용케도 일어 선 것이고 또 한 번은 트럭 뒤 돌을 싣고 언덕 내려오다가 절벽 아래로 굴렀다 간신히 소나무에 걸려 지금까지도 이렇게 숨 할딱거리며 살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두 번째 고비까지 넘겼다고 생각되는데 늦도록 술 마시다 문득 불안한 세 번째 고비를 생각하며 어두운 골목 걸어오면서 아무도 없는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자꾸 돌아본다 비틀거리다가도 얼른 길을 바로 잡는다 인생을 누군가가 고해(苦海)라고 했던가. 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다. 아프고 아슬아슬하게 걸어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는 시인의 눈이 아직도 불안하다. 그 어떤 예감으로 우리는 늘 희망적이거나 혹은 늘 불안하기 짝이
시
등록일 2013.11.03
게재일 201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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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에 머리띠 꽂고 어머니, 지팡이에 업혀 재 넘어 절에 가신다 혼자서는 쓸쓸하다고, 혼자서는 눈물겹다고, 초승달도 함께 가신다 연로하신 어머니, 하얀 머리카락 단촐하게 자르고 딸들이 꽃아 준 머리띠 하고 지팡이 짚고 절집 오르신다 어머니. 남편 일찍 여의고 아이들 다 떠나가버린 쓸쓸한 한 생을 마감해 가는 이런 어머니들이 이 땅에는 많다. 쓸쓸하고 눈물겨운 노년의 삶이 참으로 힘겨운 고갯길을 오르는 것 같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 외로운 길을 초승달도 함께 가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
등록일 2013.10.31
게재일 201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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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살짜리 암소가 석문이 등록금으로 팔려가는 날 외양간을 나서며 왕방울만한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 할머니는 자식 같은 소 잔등을 쓰다듬어준다 에미, 애비 없는 손자 석문이의 앞날을 등에 짊어지고 뚜벅뚜벅 앞마당을 걸어 나가는 3살짜리 암소 할머니는 소 울음소리를 받아 삼키며 어여, 어여 가자고 손짓 눈짓으로 배웅을 했다 시를 읽다가 가슴 한 쪽이 콱 막혀오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하는 쓰라린 서사가 바탕에 깔린 시이다. 부모를 다 잃은 손자 석문이의 등록금을 위해 애지중지 키워오던 암소를 팔러가는 날, 소도 울고 할머니도 울고 하늘도 울어주는 슬픈 그림 한 장을 보면서 이런 기막힌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흔하게 놓여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눈길도 조금만 주위를 살펴보면 가슴 뭉클한 감동에 들게 될
시
등록일 2013.10.30
게재일 201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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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는데 사람의 마음은 부서져 무엇이 되나? 밤새워 우는 새 아침 이슬 기와집 처마 끝에 걸린 초승달 더러는 풍경소리 바다는 변하여 뭍이 되는데 우리의 사랑은 변하여 무엇이 되나? 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고 바다가 변하여 뭍이 되는데 우리의 사랑은 변하여 무엇이 되는걸까 라고 자신에게 묻고 있는 시인은 오랜 사랑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애절하게 우는 새처럼 처마 끝에 걸린 초승달처럼 사랑의 애닯음과 깨끗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뿐아니라 비록 죽음으로 헤어진다해도 그 사랑은 영원히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시
등록일 2013.10.28
게재일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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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우리네 삶이 상당히 기울어져 있다. 어떤 경향성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시인은 구체적 사물인 그릇을 통해 편협하지 않은 합리적 삶과 중요의 미덕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테면 단선적이고 편향적인 규범 가치관 같은 왜곡된 세계에 대해 경계하고 대결하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강단지게 드러난 시이다.
시
등록일 2013.10.27
게재일 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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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먼동의 눈부심, 열 서너 살 이제 밥을 생각으로 바꾸기 시작하는 눈부심, 꽃의 눈부심, 살(肉)의 눈부심, 살의 입구의 눈부심에 눈 감네 골짜기를 내보내는 산처럼 모로 누워 절망을 다스리던 날들 눈부시네 만개(滿開)한 거짓의 눈부심에 눈 감네 부는 바람을 불어오는 바람을 동여매는가? 뜰의 풀은 마르고 입술 새파라니 하고는 눈부심들을 동여매네 저 석양의 눈부심 수수하게 차려 입고 가리려 하네 살의 눈부심 가리려 하네 푸르게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눈부신 아름다움이다. 시인은 꽃의 눈부심, 살(肉)의 눈부심 살의 입구의 눈부심 등을 예찬하고 있다. 언젠가는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그것마저 눈부심이 아닐까. 저 석양의 눈부심이라고 말한 시인의 인식에는 착하게 나이 들고 늙어가는 우리
시
등록일 2013.10.24
게재일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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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 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 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숨 막힐 듯한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새에서 나 여기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에 귀 기울이다보면 지하도에 웅크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아픔인 노숙자들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
시
등록일 2013.10.23
게재일 201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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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있지만 후회로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어차피 마지막은 너무 빨리 다가오고 아직은 뒤돌아보며 살 때가 아닌데 그리움의 땅으로 자꾸만 이끌리는 내 영혼을 잡으며 아직은 살아보자고 다짐을 한다 어느 젊은 수도자의 고뇌에 찬 표정 머릿속에 닮으며 나의 길을 지키고 섰다 우리네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경우 많다. 시인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한 일종의 미련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더 좋은 길 더 나은 길에 대한 미련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더 나은 직업을 선택했더라면 더 행복해지지 않았을까하는. 그러나 시인은 미련과 후회에 머물러 있지 않고 남은 삶의 길을 당당히 충실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시
등록일 2013.10.22
게재일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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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로 끝내 비(非)공무원 출입을 막았지만 북구청 구내식당은 푸짐한 점심이 금이천원, 노인과 아픈 이, 가난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뭉게뭉게 구름 피어오르고 큰 뚜껑 여닫는 소리, 여인네들 주고받는 목청이 꼭 옛날 옛적 잔치 마당 같은 거기서 여든 언저리 노인을 만났다 먼저 더듬더듬 밥, 반찬을 비닐봉지에 담아 손가방에 넣고 나서야 주름 환해지며 나머지를 먹기 시작했다 몇 차례 못 본 척, 묻지도 않았는데 그날은 등 뒤쪽으로 소리 안내고 지나가는 발자국처럼 들릴락 말락 이랬다. 집에 아픈 사람이 혼자 있어요 참 아름다운 그림 한 장이다. 어느 구청의 구내식당에서 시인이 본 참으로 감동적인 그림 한 장이 아닐 수 없다. 여든 언저리의 노인이 집에 혼자서 끼를 기다리는 아픈 배우자를 위해 밥과 반찬을 손
시
등록일 2013.10.21
게재일 20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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