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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심하다고 모두들 걱정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는데 아직은 가뭄을 해소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가뭄이나 홍수는 하늘의 일이기에 아직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예전에 가뭄이나 홍수 때 자연이나 신에 기원하듯이 오늘날에도 하늘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을까? 그러나 전지구적으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과연 이것이 단순히 자연의 섭리만인가는 의문이다. 인간이 세계를 자신과 다른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것과 대립할 때 인간 밖에 놓인 세계는 단지 인간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은 자연을 우리가 살기위한 하나의 먹잇감이거나 정복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서양의 전통은 나와 남을 분리하고 나와 바깥 세계를 분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살리기 위한 역사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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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6.29
게재일 20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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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 시험을 끝으로 한 학기는 끝이 난다. 꽁꽁 잠들어 있던 겨울 캠퍼스를 깨워낸 건 그들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대학생이었던 것처럼, 학교라고는 대학밖에 모른다는 듯 자유롭고 씩씩하게 온 학교를 누비고 다니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들은 미처 고등학생 티를 다 벗지 못한 신입생들이었다. 빈 강의 시간을 주체 못하고, 식사메뉴를 혼자서 결정하는 일도 금방 걱정거리가 되던 스무 살 그들에겐 기류변화가 극심했다. 가족과 집을 떠나와 룸메이트도 과동기생을 사귀는 일도 치러내야 하는 일이었다. 먼저 다가가고 인사 건네고 그것이 설령 사랑일지라도 풍덩 빠지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도서관에서부터 영역을 확보하길 무엇보다 꼭 새겨주고 싶었다. 4년 후 혹은 10년 또 30년 후 어디에 있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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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6.28
게재일 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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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테라피(Prolotherapy)는 증식(Proliferation)과 치료(Therapy)의 합성어로 세포재생치료법이다. 흔히 인대강화주사라고 알려져 있다. 인대의 염증부분에 주사하여 인위적인 염증반응을 유도하고 재생세포의 증식을 유발해 강화 및 치료를 하는 통증클리닉에서 많이 시행되는 비수술적 치료방법이다. 상처가 생긴 조직에 주사액을 주입하면 삼투작용에 의해 염증이 유발되었다가 조직이 회복되도록 도움을 주는데 프롤로 치료를 받으면 일시적인 아픔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인대 혹은 힘줄 자체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오래전 무거운 짐을 옭기다가 팔꿈치를 인대에 이상이 생겨 6개월 이상 고생을 하였다.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기도 하고 한방에서 침을 맞기도 했다.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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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6.25
게재일 201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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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3일 중동 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참담한 심정, 책임을 통감` 그래서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카메라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국민들은 감동받기보다는 사과한 저의를 궁금해 한다. 참 나쁜 국민들이라고 욕하기 전에 그도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1일 국회 메르스 대책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삼성이 메르스 확산에 대해서 문제의식도 없고, 뚫린 것 아니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삼성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이렇게 답했다. “국가가 뚫린 것이다”라고. 그 당당함에 놀랐던 국민들이니, 이 정도의 사과가 생뚱맞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삼성(병원)도 억울할 것이다. 방역당국이 초기 대응을 적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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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6.24
게재일 201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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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도심과 재래시장은 한산해졌고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았으며 유통업계와 중소기업, 소상공인업자와 농민 등 계파와 계층을 막론하고 휘청거리지 않는 곳이 없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침병(侵病) 이후 월여 동안의 풍경이다. 언제나 무능과 무지가 축(軸)을 같이한다. 정부는 “낙타 만지지 말고, 사람 많은 곳 피하고, 손 깨끗이 씻으라는”무소신의 한심함으로 초기 대응을 그르쳤다. 정보 공개로 방침을 바꾼 뒤에도 정부는 허둥거렸다. 접촉면을 차단 개미 한 마리도 지나치지 않겠다던 장담은 `메르스 병원명단`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여기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람들마저 나타났다. 늦은 밤 개선장군처럼 불확실성 정보를 공개한 어느 시장이 그러하고, 국회에서 국가를 탓하며 회피성 발언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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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6.23
게재일 201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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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윤리학 수업을 하다보면 받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윤리, 도덕을 공부해야 하나요? 학생들의 말에는 은연중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분들이 청문회 등에서 보여 준 말과 행동은 윤리, 도덕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당연히 좋은 대학도 나오고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인데 그들의 삶은 윤리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윤리, 도덕을 공부한다고 도덕적이지 않다면 윤리, 도덕을 배울 이유가 있을까? 윤리, 도덕을 실천학문이라 한다. 이 말은 윤리, 도덕은 그 이론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직접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윤리, 도덕을 배우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윤리와 도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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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6.22
게재일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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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영화보기 모임을 만들었다. 독서회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하나쯤은 늘 소속되어 살고 있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인쇄술이 보급되고 오랫동안 그 가치를 누리고,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던 책은 이제 그 위상을 다른 매체들과 나누고 있다. 지금이라고 책이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어렵게 구해 읽던 만큼의 오롯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을 고백한다. 몇 번을 보아도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이는 일이 놀랍다. 함께 보는 이가 누구인가도 상관된다. 지나간 영화를 혼자서 다시 보기는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같이 보는 일은 기대가 되고 그의 반응 또한 궁금해진다. 모두가 같은 장면을 보는데도 관점과 해석이 다른 것도 참 신기하다. 그는 주옥같은 대사에 감동하고, 또 다른 그는 주인공과 배우에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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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6.21
게재일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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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대교육(隔代敎育)`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소녀를 맡아서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대가족제도 하에서는 3대(三代)가 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산업화로 인해 부부 중심의 핵가족 제도로 바뀌어 갔고, 교육의 주체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서 젊은 부부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 농촌에는 조부모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많다. 그동안 조부모들은 농사일로 바쁘기도 하고 교육정도가 낮아서 손자녀를 교육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점차로 교육을 많이 받은 젊은 조부모들이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손자녀를 돌보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부모들이 자기의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하다. 하지만 그 동안 아이들의 양육은 현실적으로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거의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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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6.18
게재일 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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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캄캄한 골목길을 걸을 때면 불안과 공포가 밀려온다. 무엇이 나타날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나를 헤치려고 숨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둠 때문에 주위를 분간할 수 없어서 그렇다. 어둠은 불안과 공포를 유발한다. 작은 손전등이라도 하나 들면 그나마 인심이 되는 것은 그 불빛이 주변을 분간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근 한 달 동안 퍼지고 있는 메르스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어둠` 때문이다. 우리는 메르스 바이러스 자체에 대해서 잘 모른다. 또 충분한 연구 결과를 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당국이 발표하는 대책은 어둠 속에서 떠도는 듯하다. 메르스는 공기감염이 안 되고, 또 지역전파도 없을 것이라 했다. 즉 병원 내 감염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병원이 아닌 보성의 한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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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6.17
게재일 201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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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처음 종교를 대한 것은 지금부터 반세기 전,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인문학 강의 시간이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빵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따라 홀린 듯 성당으로 들어갔다. 스테인드글라스의 황홀경에 멍하니 서있는데 하얀 옷차림의 수녀가 나타나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맛있는 빵과 예쁜 수녀 누나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꼬임에 넘어갔다. 성가대 활동과 토론회 등 여학생들과의 교류로 시작된 교회의 매력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동운동 금지를 어기고 유인물을 만들다가 담임목사에게 들켜 그만 교회를 떠나게 된다. `불교 학생회`주관 수련회에서였다. 송광사에서 구산스님과 법정스
칼럼
등록일 2015.06.16
게재일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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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하나를 선물 받았다. 나무 하나와 그 나무에 핀 꽃 하나 있는 화분이다. 홀로 있는 작은 나무를 보니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 우리는 함께 있지만 결국 혼자 사는 것이니. 나무의 삶은 목적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인간이 만든 것은 목적이 분명하다. 연필은 쓰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잘 쓰이는 연필은 자신의 목적을 잘 수행하는 것이고 탁월한 삶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연이나 인간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나무는 왜 사는 것일까? 우리 인간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니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만약 내 삶의 목적을 알 수 있다면 내 삶도 그 목적을 잘 수행할 때 나는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 삶은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노동과 상호작용. 내 밖의 외
칼럼
등록일 2015.06.15
게재일 201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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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잘 닿지 않는 보도 블럭 사이에 이끼가 웃자랐다. 마치 초록 융단처럼 부드러워 보여서 쓰다듬어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엘리베이터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소위 고층에서 살고 있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육교 위 먼지 틈에도 뿌리 내려 꽃을 피우는 풀꽃이 가슴 아프고, 베란다까지 날아온 풀씨가 귀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화분 귀퉁이 괭이풀을 그대로 두기도 했다. 이끼가 자라는 사이 아파트 담벼락 밑으로는 잡초들도 제법 자라고 있었다. 익숙한 들풀이긴 하지만 그들이 눈에 띈 것은 분명 익숙한 풍경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로수가 심어진 흙바닥에도 조금, 어쩌다 용기를 낸 몇 포기는 인도의 제법 가장자리까지 진출해 있었다. 되도록 그들을 피해서 발을 내딛던 마음은 역시 고층에서 이십년 넘게 살고 있는 삭막한 배
칼럼
등록일 2015.06.14
게재일 201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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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 순간마다 선택하며 살아간다. `무엇을 먹을까?`, `어디갈까?`, `누구를 만날까?`모든 삶이 선택이다. 선택을 위해 요구되는 것은 우선 순위이다. 모든 판단에는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 작용한다.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일과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 않지만 빨리 처리해야 할 일과 중요하지도 않고 빨리 처리하지도 않은 일 등을 잘 구분할 수 만 있다면 선택은 용이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일들이 나의 선택과 관련없이 주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시점과 장소, 나의 부모, 나의 유전적인 특질 등은 내가 선택한 것들이 아니다.내가 왜 아프리카나 유럽이 아닌 한국에서 태어났고, 신라시대나 조선시대가 아닌 이 시대에 살고 있는가? 질병의 원인들도 나의 생활태도 보다도 유전적인
칼럼
등록일 2015.06.11
게재일 20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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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사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공포가 나를 텔레비전 앞에 끌어 앉혔다. 평소 지상파방송을 통해서 뉴스를 듣고 나면 종편으로 채널을 돌려 그 `종편스런` 평론(해설, 독설, 섬어 등)을 나름대로 즐기면서 듣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아니다. 불안한 마음은 그 어떤 섬어조차 괜스레 솔깃해진다. 이런 차에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 그리고 여러 공무원들이 입은 노란 점퍼가 눈에 띈다. 메르스 확산방지 비상회의, 기자회견, 국무회의 등 모든 회의 때마다 그들은 노란점퍼를 입고 나왔다. 그런데 그 점퍼의 노란색이 새뜻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연의 색깔이 아니라 비상상황임을 보여주기 위한 대국민용 맞춤 색깔이어서 일까. 아니면 사태의 긴박함이나 다급한 대응이 없어서일까. 그
칼럼
등록일 2015.06.10
게재일 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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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한 사유가 자못 깊어진다. 나이가 들었다는 표증이리라. 자유를 사전에서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로 풀이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대구시립중앙도서관에서 `목요철학 인문포럼`이 열린다. 30여 년 전통의 인문학 강좌로 특히 인상적인 것은 200여 명의 수강자 중 상당수가 ― 남녀 할 것 없이 육칠십 대의 고령이라는 점이다. 주관자인 노교수는 풍재(風裁)가 남달랐다. 단순히 동안이라는 관점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감동으로 바뀌었다. 십여 년을 초월한 젊음보다는 예의와 겸양이 일상화된, 말 그대로 퇴연(退然)함이 물 흐르듯 하는, 해맑은 표정과 몸에 밴 화사한 겸손의 절제된 자유 의지가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노교수는 주어진 일상의
칼럼
등록일 2015.06.09
게재일 201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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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점차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며 어느 때보다 건강에 조심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은 퇴근해 집에 들어갈 때마다 손 씻으라 재촉한다. 우리는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때 불안하며 그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인류사를 계몽의 역사라 부르는 이유 중 하나도 모르는 것을 차츰 알게 됨으로써 인류의 지식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예전에 우리가 알지 못하던 자연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을 숭배하거나 신화를 만들어 우리가 이해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미신이나 신화를 우리의 이성이 납득하도록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비합리적이라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우리의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칼럼
등록일 2015.06.08
게재일 201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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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작은 역을 지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남자는 수화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연인에게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얼마나 화사하게 오직 웃기만 하던지. 남자의 손은 도대체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를 하기에 연인을 저렇게 아름답게 웃게 할 수 있는지, 할 수만 있다면 다가가 엿듣고 싶을 지경이었다. 역사 마당엔 오래된 벚나무가 있고 신록은 꽃보다 더 찬란하게 반짝이고, 연인들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보는 이의 마음을 찌르며 빠르게 전파되었다. 기차 안이 조금씩 환해지고, 누구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웃어주고 싶어졌다. 자신을 망가뜨려서라도 여러 사람을 웃게 해주는 지인이 있다. 채신 좀 지키고 조용히 해주길 바란 적도 있었다. 그것이 그의 배려
칼럼
등록일 2015.06.07
게재일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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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곳이다. 작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곳 출신인 성 프란치스코 성인(1182~1226)을 따 교황명을 지었다 해서 더욱 그러하다.1253년 완공된 성당 역시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리고자 건립됐다.이 성당은 1997년 9월26일 두차례의 강진으로 크게 붕괴되고 조토 등 유명화가의 벽화들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하지만 2년 정도의 짧는 기간 안에 거의 완벽하게 복원되어, 5년이 지나고도 복원의 헛점을 드러낸 숭례문 복원과 대비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향력은 건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800년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고 끊임없이 전설이 되었다.아시시 수호성인을 넘어 심지어 반려동물들을 축복하는 환경보호의 수호성인으로 선포
칼럼
등록일 2015.06.04
게재일 201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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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쾌의 혀가 /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 막대기 같은 생각 /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최승호 `북어` 부분) 지난 토요일, 서울역사(驛舍)를 빠져 나오는데 풍물소리가 신명나게 들렸다. 광장에는 만장 같은 깃발이 펄럭이고, 한 무리 풍물잽이들의 가락에 뜨거운 햇살도 출렁출렁 흔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광장에는 두 무리만 있었다. 머리띠를 두르고 노란 조끼를 입은`그들`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신명도 나고 시끄럽기도 한 그 풍물소리를 들은 척 만 척 눈길도
칼럼
등록일 2015.06.03
게재일 201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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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다. 유월이 되면 짙푸른 녹음이 절정을 이룬다. 그 녹음이 새삼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짙푸른 녹음 속 특별히 경건해지는 곳이 있다. 호국의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 그 현충원에 2012년 5월, 소방공무원들의 오랜 숙원인 소방공무원묘역이 별도로 조성되었다. 경찰공무원들이 1985년부터 별도 묘역에 안장된 것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길고 긴 각고의 세월이었다. 소방 조직은 부침을 거듭해 왔다. 1948년 정부 수립과 더불어 경찰 산하에서 개청된 조직은 1975년 다시 민방위본부 산하로 흡수되었고, 2004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독립 기관인 소방방재청으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세월호 참사로 인한 해양경찰청의 해체와 더불어 2014년 본의 아니게
칼럼
등록일 2015.06.02
게재일 2015-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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