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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마흐무드는 시리아 출신의 의사였다. 그는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샌드위치 압박`을 받다가 탈출을 결심했다. 정부군은 “다친 반군을 치료해준 의사”라며 그를 체포하려 했고, 반군은 “너, 정부군 편이지?” 했다. 그는 쪽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려했으나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11시간 표류하다가 터키에 닿았다. 그는 거기서 의사를 포기하고 `난민 브로커 조직`에 들어갔고, 그리스로 가려는 난민들에게서 1인당 1천100 달러를 받았다. 이런 일은 당시 불법이므로 터키 경찰에게 적잖은 뇌물을 주었다. 마흐무드의 월 수입은 수천만원이다. 그의 이름은 인터폴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그러나 이제 체포되지 않게 되었다. 3살짜리 소년의 죽음으로 `난민보트 운영과 브로커업`은 더 이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과
칼럼
등록일 2015.09.23
게재일 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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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되는 나라`들은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높았다. 통일신라는 인도양을 건너 아라비아까지 끌어안았고, 육지로는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터키까지 오갔던 `초원의 길`이 있었다. 아랍사람 `처용`은 신라조정에서 벼슬을 살았고, 저 유명한 `처용가`를 남겼다. 아라비아의 고지도에는 `SILLA`가 뚜렷이 그려져 있고 `황금의 나라`라는 설명까지 붙어 있다. 이것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힘이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힘도 넓은 교류와 포용력에서 나왔다. 고려 개성의 벽란도는 송나라, 베트남, 태국, 요나라, 여진국, 일본 등지를 오가는 국제항만이었다. 정치에는 막대한 돈이 드는데, 고려 왕건은 광범한 국제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것이 정치권력으로 이어졌으며, 그의 오지랍 넓은 포용력은 삼국을 통합하
칼럼
등록일 2015.09.22
게재일 201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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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왕조시대에도 흉년이 들면 임금도 고통분담을 했다. 반찬 가지수를 줄여 소박한 수라상을 받았고, 가뭄이 심하면, “왕이 부덕한 소치”라며 곤룡포를 벗고 상복(喪服)을 입었다. 상복이란 죄수복이었다. 삼베로 지은 험한 옷을 입고 하늘을 가릴 삿갓을 쓰고 외출했다. 태종 이방원이 비를 기다리며 대궐 뜰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내 빗방울이 떨어졌다. 내시들이 급히 우산을 씌우려 하자 왕은 “우산 걷어라. 곤룡포에 떨어지는 빗방울 자욱보다 더 아름다운 무늬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업난으로 신음하는 청년들과 고통을 나눈다. 7가지를 포기한 `7포 청년`을 도울`청년희망펀드`를 만들고, 2천만원을 낸 후 매월 월급의 20%를 기부한다. 총리, 장관, 공공기관장들이 가만히 있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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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9.21
게재일 201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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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카스트제도가 있는 것같이 우리나라에도 `계층구조`가 있었다. 신라때는 골품제도가 있었고, 고려·조선때는 양반계급과 음서가 있었다. 신라의 골품은 태어날때 부터 결정됐다. 6두품이었던 최치원은 소년시절 중국으로 건너가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해 신분의 한계를 극복했다. 고려와 조선의 음서제도는 `법전`에 그 규정이 상세히 적혀 있다. “매년 1월에 음서를 뽑고, 20세 이상이 대상이며, 종실이나 공신 중 5품 이상 관리의 아들·손자·사위·동생 중 단 1명만 음서 대상이며, 음서로 등용된 자의 임명장에는 반드시 蔭(그늘 음)자를 써서 그 표시가 평생 따라다녔으며, 음서로 등용된 자는 당상관 이상 올라갈 수 없고, 홍문관·예문관·사헌부·사간원 등 청요직에는 갈 수 없다”는 내용이다. 생원과와 진사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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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9.20
게재일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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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평해전`은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애국심을 고취한 효과를 냈다면, `베테랑`은 악덕재벌과 그 2세의 `정신병적 악행`에 맞서 싸우는 베테랑 형사의 집념을 그려`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웅변했다. 그리 새로운 소재는 아니지만, 관객들은 “돈이 자식을 버리는구나” “재물이 재앙이구나” “재벌이 아니라 죄벌이구먼” 그런 생각을 굴리며 영화관을 나선다. `노사정 대타협`이란 활자가 신문에 크게 찍혔다. 우리나라 만큼 기업에 대한 반감이 많은 나라도 드물고, 귀족노조에 대한 혐오감이 심한 나라도 드물고, 정치·행정에 대한 불신이 높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삐걱거리는 나라가 이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실로 기적이라 할만한데, 그것은 `세계1류기업`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재벌을 크게 밀어준 덕분이다.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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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9.17
게재일 201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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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정헌법 제43조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제출케하며 증인의 출석과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에 의해서 국정감사는 비롯됐다. 영국과 미국은 `상시청문회 제도`여서 매일 국정을 감사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일년치를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기형적인 변종이다. 그런데 검찰이 서류 제출과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검사의 기소권 행사에 대한 국회의 간섭은 사법권의 침해로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5·16 이후 “다만 재판과 진행중인 범죄수사·소추에 간섭할 수 없다”란 단서조항을 붙였다. 1972년 유신헌법에 의해 국감이 폐지됐다. 감사원의 감사권만 남고, 국회의 국정 감사·조사권은 “실효도 없으면서 너무나 소모적”이라는 이유로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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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9.16
게재일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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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는 광복 직후 검정으로 출발했다가 박정희 대통령때부터 30여년간 국정으로 했고, 노무현정권시절인 2007년 이후 검정으로 바뀌면서, 좌파 사가들이 국사교과서를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편찬하게 됐다. 박근혜정부는 다시 국정으로 돌아가려 한다. 새누리당 이정우 대변인은 최근 “좌파 성향의 학자들이 집필한 역사교과서의 편향성과 反대한민국 정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며 “좌파 사가들의 역사관이 계속 교과서에 반영된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 했다. 지금 많은 논자들이 국정을 반대한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놓고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토론하는 것은 문명국의 보편적 상식이고, 그래야 다원적 가치와 창조성, 상상력이 확대되는데, 역사 해석의 권리를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이 모든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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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9.15
게재일 201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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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모택동은 `반우파 투쟁`을 벌인다. “공산당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 사회주의의 나쁜점을 말해달라”했다. 지식인 55만명이 바른말을 했다. “그래, 그것이 너희들 본심이지? 네놈들은 우파야”그들은 탄압당하고 숙청됐다. 毛는 이것을 `인사출동(引蛇出洞: 뱀을 유인해 동굴에서 나오게 한다)`의 묘수라 했지만, 그 후 지식인들은 입을 닫아버렸다. 지식인의 의무를 포기하게 만들었고, 중국인들은 지금도 `속에 있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게 됐다. “나무는 겉껍질이 벗겨질까 두려워하고, 사람은 속마음을 다칠까 두려워한다”란 중국속담도 여기서 생겼다. 공자는 “국가경제, 국방, 신뢰, 이 셋 중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신뢰”라 가르쳤지만, 毛는 문화대혁명 당시 공자를 비판하면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칼럼
등록일 2015.09.14
게재일 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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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독재국가에서 한 남자가 재판소에 잡혀왔다. “우리 수령님은 바보다”그 한 마디 한 죄였다. 판사는 15년형을 선고했다. 국가원수 모독죄로 5년, 10년은 `국가기밀 유출죄`였다. 유머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나라를 거덜내는 바보를 `신`으로 만드는 정치쇼를 통박한 풍자가 재미있다. 노무현정부 시절 경찰청장을 지낸 허준영씨가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에 취임하면서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종북 세력을 두더지 잡듯 분쇄하는 일은 중단없이 계속돼야 한다”는 취임사를 한 것이 이번 국감에 걸렸다.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한국대표로 참석해서 김일성 주석과 감격적인 포옹을 하고, `통일의 꽃`으로 국빈대우를 받았던 임수경 새정련 의원이 그 취임사를 걸고 넘어진 것. “종북의 개념이 뭡니까. 저도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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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9.13
게재일 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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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근본주의가 준동하는 나라 치고 조용한 곳이 없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박멸되자, 시리아에서 IS가 나타났다. 그들은 인질을 잡아 돈으로 흥정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일본이 `IS 박멸 자금` 20억 달러를 내겠다고 하자, 일본인 기자를 잡아 “그 20억 달러를 주면 이 인질을 풀어주겠다”고 하다가 일본이 듣지 않자 목을 쳐 죽였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 출신 이민자의 아들이다. 친부 존 잔달리는 1931년 시리아 홈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위스콘신대학에 다니던 중 동급생 캐럴 심슨을 만나 속도위반으로 아들을 낳지만, 심슨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을 못하자, 그 아들을 `잡스씨 가정`에 입양시켰고, 아이는 `잡스`라는 성을 갖게 된다. 그 후 생부와 아들은
칼럼
등록일 2015.09.10
게재일 2015-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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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35대 경덕왕은 어느날 황룡사를 돌아보고 금당(堂)이 너무 소박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중신회의를 열었다. “금당 벽에 소나무 하나 그렸으면 좋겠는데…” “솔거라는 환쟁이가 있습니다” “이름이 좀 특별하구려” “어릴때부터 늘 솔숲에 들어가 살다 시피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그 화공에 시켜서 소나무를 그리시오” 이렇게 돼서 금당 벽화 노송도가 그려졌고, 새들이 실제 소나무인 줄 알고 날아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솔거`라는 이름과 새들 이야기를 처음 기록한 `삼국유사`. 고려 말 일연스님은 운문사 인근 암자에서 책을 쓰고 있었고, 황룡사 건립에 관한 일화를 자세히 적었다. 몽고군이 경주 시내 사찰들을 불태우고 파괴할 무렵에도 일연은 운문사에 있었고, 경주의 참상을 직접 봤을 것이다. 그러나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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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9.09
게재일 201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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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거의 박멸돼가니 또 IS가 분탕질이다. 지중해 동쪽 시리아를 점령한 IS가 고대유적지 팔미라시에 있는 신전을 연이어 파괴한다. 바알 샤만 신전을 폭파한지 일주일만에 또 벨신전에 폭약 30톤을 터트렸다. 200m 높이의 돌기둥으로 이뤄진 벨신전은 팔미라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고, 그리스 양식과 로마 양식을 혼합한 그레코로만과 고대 중동의 건축술이 어우러진 세계문화유산이다. 2011년 IS가 시리아를 점령한 후 피난민들이 줄을 잇는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이 준동하는 지역마다 그렇다. 시리아에서 조각배를 타고 지중해를 넘어 서쪽으로 가다가 풍랑에 뒤집혀 수장되는 어린 생명이 1만명이 넘는다. 그 중에서`파도에 떠밀려 나와 모래밭에 얼굴을 묻고 숨져 있는 3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참상을 찍은 터키
칼럼
등록일 2015.09.08
게재일 20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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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은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 헌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평화 시대에나 힘을 쓰는 헌법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패한 독일로서는 그런 `완벽한 민주주의 헌법`이 오히려 독이었다. 야당은 사사건건 발목을 걸고, 정부 여당은 제대로 정책을 펼 수 없었다. 이때 독일국민들은 `독재자`를 기다렸고, 히틀러를 선택했다. 그는 강력한 정부·여당을 만들었고, 야당을 무력화시켰다. 그래서 패전국 중에서 가장 먼저 악성 인플레를 잡아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그가 인종청소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아마 `독일의 성군(聖君)`으로 남았을 것이다. “9월이 되면 여의도에 거대한 암시장이 선다” 대기업에서 대관(對官)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내뱉는 탄식이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의원들이 대기업 총수나 임원들을 국회에
칼럼
등록일 2015.09.07
게재일 20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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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문화권에는 오방색(五方色) 개념이 있다. 동쪽은 푸른색, 남쪽은 붉은색, 서쪽은 흰색, 북쪽은 검은색, 중앙은 노란색으로 각 방향에 색깔을 부여한 것이다. 관리가 처음 등용되면 푸른 관복을, 높이 올라가면 붉은색 관복을 입고, 초상이 나면 흰색의 상복과 관모를 착용했고, 질병이 돌거나 전쟁이 나면 관리들은 검은색 관복을 입었다. 그리고 중앙은 노란색인데, “우리는 세상의 중심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 황제들은 노란색 곤룡포를 입었다. 그래서 오직 중국 황제만 노란색을 입을 수 있었고, 변방의 왕들은 다만 붉은색 계통의 곤룡포를 착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노란옷을 입고 참석했다. 옛 황제시절 같았으면 `무엄한 행위`였다. 중국인들은 홍복(洪福)과 발음이 같아서 홍색을 좋
칼럼
등록일 2015.09.06
게재일 201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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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일생을 산 화가들이 많다. 빈센트 반 고흐는 선교사의 가정에 태어나 자신도 목회자가 되려 했지만, 신학교에 들어가지 못해 화가가 됐다. 라틴어 시험에서 번번이 낙제했기 때문.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시대를 너무 앞서 간 죄로 천덕꾸러기에 거지로 살 수밖에 없었다. 동생 테오가 생활비와 물감을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테오의 아내가 시숙의 평전을 쓰지 않았다면, 오늘날 `그림 한 점에 아파트 몇 채 값`이 나가는 고흐는 없었을 것이다. 금융회사 중견 사원으로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던 고갱은 어느날 갑자기 그림도구 챙겨들고 남태평양 타히티섬으로 들어갔다. 문명에 때묻지 않은 `원시의 순수`가 그를 매혹시켰던 것. 그러나 고갱의 그림도 팔리지 않았다. 전시회를 열었지만 “외설적이다.
칼럼
등록일 2015.09.03
게재일 201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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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태안군 마도해역은 예로부터 난행랑(難行浪·지나기 어려운 뱃길)이라 불렸다. 중국-조선-일본-페르시아 등지를 다니는 무역선과 나라에 바칠 물품을 실어 나르는 조운선이 숱하게 침몰된 해역이었다. 그래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보물 건져올리기`가 빈번해지고 `수중고고학`이라는 분야가 새로 생겼다. 경주시를 `야외 박물관`이라 부르는 것같이 태안해역을 `바다박물관`이라 한다. 침몰한 배에서 고려 청자가 무더기로 발굴됐는데, 최근에 건져올린 `마도4호`에는 조선 백자가 잔뜩 실려 있었다. 이 마도4호선은 조선 태종과 세종시대에 세금으로 받은 쌀과 보리를 실어나르고, 남해안 지역에서 구워진 분청사기를 중앙정부에 공납(貢納)하는 일을 하다가 침몰한 조운선이었다. 도자기와 먹글씨로 씌어진 죽간(竹簡)물목은 변
칼럼
등록일 2015.09.02
게재일 201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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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1회 선학평화상 시상식이 있었다. 상금은 100만 달러(약 11억원)이고, 매년 시상하며, 세계평화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한다. 2012년 타계한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초대 총재의 염원을 기려 2대 한학자 총재가 제정했다. “인류는 한 가정” “내 평생 목표는 굶주림과 가난을 줄여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란 문 총재의 정신이 깃든 상이고,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이 운영위원장이다. 이번 시상식에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참석했고, 성악가 조수미씨와 리틀엔젤스가 축가를 불렀다.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문 총재 타계 3주기를 맞아 “문선명 선생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추모메시지와 김양건 명의로 조화(弔花)를 보냈다. 문 총재는 김일성
칼럼
등록일 2015.09.01
게재일 201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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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리즘`이란 말은 `문화파괴자`란 뜻이다. 북방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5세기 로마를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당시에는 `문화유산`이란 개념이 없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의 천재들도 당시 장인(匠인)이고 `미술재주를 팔아 생활하는 막노동자`였다. 고려 말 몽고군도 문화를 철저히 파괴했다. 경주 황룡사와 영묘사 등이 그때 사라졌다. 불가사의한 9층목탑, 새들이 날아들었다는 솔거의 `노송도`, 에밀레종보다 몇배나 큰 대종 등이 그때 없어졌다. 황룡사 복원 계획이 있지만, 원형 복원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생겼다는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주 동남산 옥룡암 옆에 있는 암벽에 9층목탑과 7층목탑이 음각돼 있어서 어렴풋이 짐작이나 할 뿐이다. 현대기술로도 9층목탑
칼럼
등록일 2015.08.31
게재일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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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예술대학인 경주예술학교는 해방 이듬해 1946년에 설립됐다. 경주출신의 서양화가 손일봉 손동진 최현태 이기섭, 한국화가 박봉수, 공예가 김한천 김무종, 서예가 최현주 등이 `서라벌예술가협회`를 결성하면서 이들이 주축이 돼 세운 예술학원이다. 명칭은 `학교`로 돼 있지만 사실 `대학`이었다. 미술과, 음악과, 국악과로 편성됐고, 2년제 전문대학으로 출발해 이듬해 3년제로 승격했고, 장차 4년제로 갈 계획이었으나, 불행히 실현을 못 봤다. 당시 해방공간에서는 좌·우 이념대결이 치열했다. 좌익들은 이 예술학교가 순수예술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난동을 부렸다. 그들은 모택동의 `문예강화(講話)`이념에 따라 “예술은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치에 도움이 안 되는 예
칼럼
등록일 2015.08.30
게재일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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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돈을 들여 핵무기를 개발해놔봐야 별 소용이 없다. 역사적으로 원자탄이 실제 사용된 것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떨어진 2개 밖에 없다. 여러 나라들이 핵폭탄을 가지고 있지만 다`위협용`이지 `실용성`은 없다. 북한의 핵무기도 마찬가지다. `협박용`으로 가지고 있다가 돈이 궁할때 “내가 핵폭탄 가진 것 알지?”라며 `노상 강도행각`에나 쓰일 뿐이다. 좌파정권 시절에 “한국은 북한의 현금 자동 지급기”란 소리를 들었다. 달라는대로 고분고분 퍼주었다. 그러나 MB정권·박근혜정부에 들어서면서 그 돈줄이 끊어지자 천안함 폭침, 연평해전을 자행하더니 목함지뢰 도발까지 왔고 결국 `확성기 방송 재개`를 불러왔다. 북을 향해 불어대는 확성기 방송은 지난 11년간 중지됐었다. 마이크도 철거됐다. 그것이 목함지뢰 사건
칼럼
등록일 2015.08.27
게재일 201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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