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명 사망 인덕요양병원 참사와 `판박이`
사망자 대부분 고령에 유독가스 발생이 화 키워
스프링클러 설치 면적 관련 법규정 보완 등 시급

8년전 포항 인덕요양원 화재 참사의 판박이 사건이 경남 밀양에서 또다시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포항 요양원 사고 당시 지적됐던 문제점이 8년이 지나고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사회 안전불감증이 중증을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노인복지시설인 노인요양병원에서 대형 참사가 잇따르면서 고령의 부모를 모셔야 하는 자녀들은 “부모를 편하게 모시려다 외려 장례를 치를 수 있겠다”는 불안감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어머니를 포항시내 한 요양원에 모시고 있다는 직장인 A씨(58·포항시 죽도동)는 밀양 노인요양원 화재 참사가 나자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병원의 안선시설을 확인해 봤다고 했다.

<관련기사 2, 7면> A씨는 “병원측으로부터 법적 안전시설 기준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환자들이 화재 등 비상시에 생명을 지키기에는 매우 비현실적”이라며 “휠체어나 침대를 통째 대피시킬수 있도록 하고, 벽에 자그마하게 게시토록 돼 있는 탈출구 안내도 찾기 쉽게 하는 등 비상시 노인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특별한 안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병원은 비상탈출용 망치를 치매환자들의 난동을 우려해 간호사실 선반 등에 감춰두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 고령·거동불편 환자 대다수 … 화재에 `속수무책`

지난 26일 상오 7시 30분께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발생, 28일 현재 38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당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화재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 중 80대가 17명으로 가장 많았고, 90대가 9명, 60대와 70대가 각각 4명이었다. 대부분 고령층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화재라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해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재 장소인 세종병원처럼 장기요양 환자가 많은 병원은 화재발생시 스스로 대피할 수 있는 환자가 극소수에 불과해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환자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이 최초 1층 응급실 옆 탈의실 천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점점 번져나갔다.

불 자체도 문제였지만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가 더욱 문제였다. 유독가스를 차단할 방화문이 열려 있어 연기를 마신 환자들은 순식간에 질식했다. 휠체어, 환자용 침대 등의 이동이 많은 병원 특성상 평소에 방화셔터를 내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 피해규모를 더욱 키우고 만 것이다.

병원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구조적 문제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적된다. 세종병원은 소규모 병원으로 분류돼 법적으로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다면 화재 진화에 큰 도움이 돼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8년 전 포항 인덕요양병원 참사와 `판박이`

8년 전 포항에서도 대규모 인명피해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10년 11월 12일 오전 4시 24분께 포항시 남구 인덕동 인덕요양병원에서 전기합선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 피해자 중 부상자 1명을 제외한 26명은 모두 70대 이상의 고령환자들로, 대부분 자신의 침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독가스를 흡입 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당국은 신속히 출동해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칠흑같은 어둠과 복잡한 내부구조로 인해 구조작업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 관계자는 “사망자들 모두 직접적 화상보다 연기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된다”면서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아 대피가 여의치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화문, 스프링클러 등 화재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도 없었다.

사고가 발생했던 요양병원은 1973년 건립돼 수십년간 제철동사무소로 활용됐다가 2007년 리모델링 후 전체 2층 건물 396㎡규모의 요양병원으로 활용됐다.

당시 소방법은 600㎡ 이상 건축물에 스프링클러 등 고정 소방시설을, 400㎡ 이상에 비상경보시설과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토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400㎡ 이하 시설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대상에 제외돼 있어 이같은 기준에 맞춰 인덕요양병원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밀양사고는 8년 전 사고와 판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비슷한 조건 속에서 더 많은 목숨이 희생돼 국가 차원의 안전시스템 확립 실패에 따른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소방법을 포함한 안전과 관련된 법제도를 만들 때 `예외규정`이라는 것을 너무 많이 두고 있다. 이는 대형참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안전을 고려해 이러한 예외규정을 두지 않는다”며 “일례로 방화문 설치와 관련된 규정 중 `방화문이 화재시에 자동으로 닫힐 수 있다면 평상시에 열어두어도 된다`라는 예외규정이 있는데 방화문이 닫히려면 퓨즈에 화재와 같은 열이 가해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 화재처럼 불은 올라오지 않고 유독가스만 올라온다면 방화문은 작동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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