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잣집 사랑채 앞에 산수유가 활짝 피어 있다.
봄은 노랑이로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하는 시인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 제목을 따라 해 보았다. 따스한 햇살에 온몸이 나른해져 오는 봄을 색으로 표현하면 노란빛이다. 개나리, 민들레, 노란 병아리, 봄을 상징하는 것들의 색깔이다. 그중에 이번 주가 절정인 꽃이 산수유다.

경주 최부잣집 사랑채 앞에 키가 높은 산수유 한 그루가 관람객을 반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는 사람마다 금방 산수유 아래로 쪼르르 달려가 사진을 찍는다. 노란 꽃잎을 가득 맺은 가지가 기와지붕과 어우러져 더 환하다. 하늘은 파랗게 꽃의 배경을 담당한다. 사랑채 앞으로 늘어진 산수유 가지가 창호지와 문살에 어른거려 이곳에 살았던 후손들의 봄이 얼마나 고왔을까 짐작되었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턱은 옹이가 그대로 있는 울퉁불퉁한 나무로 마감했다. 들어서자마자 마당 가운데 집안 살림살이를 담당한 안주인이 머무는 곳이라 단지가 가득한 장독대가 놓였다. 문살의 모양도 방마다 다양해 잘 가꾼 살림집의 모습이다. 높이 솟은 붉은 벽돌의 굴뚝이 흔한 가정집의 굴뚝과 달랐다. 궁궐이나 큰 절에서 봄직한 크기와 모양새다.

비가 오면 처마 아래로 다니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드나드는 손님을 배려하는 것은 이 집안의 전통이다. 툇마루 밑에 물그릇을 놓아둔 것은 동네에 오가는 길냥이들 목을 축이라는 뜻일 게다. 사람뿐 아니라 이 집에 들어오는 동물 한 마리도 보살피는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최부잣집은 경주 최씨 가문이 17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300년 간 부를 이어왔다. 12대로 대대손손 가훈을 지켜가며 부를 쌓았고, 나그네나 거지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밥을 먹여주는 좋은 선행을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다. 소작료를 수확한 곡식의 반만 받고 중간 관리자인 마름도 두지 않았다.

거름을 쓰는 시비법과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수확량을 크게 늘렸다. 최국선이 대를 이었을 땐 이미 최부잣집은 조선 최고의 부자였다. 흉년이 들어 농민들이 쌀을 빌려 간 것을 못 갚게 되자 안타까워하며, 아들 최의기 앞에서 담보문서를 모두 불살랐다. 소작 수입의 1/3을 빈민구제로 쓰는 풍습이 생기면서 200년 후인 최준 대에까지 이어진다. 해방 후엔 전 재산을 모두 털어 대구대학(현재의 영남대학교)과 계림학숙을 세웠다.

바로 옆은 350년 역사의 교동법주이다. 국가 무형문화재 제 86-3호 국주(國酒) 중 하나라고 하니 더 의미가 있어 보였다. 경주 교동법주는 유통기한이 한 달 채 되지 않는다. 전통 국주이기에,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아 유통기한이 길지 않다. 찹쌀로 죽을 쑤고 누룩을 섞어 오랫동안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다. 이 밑술에 찹쌀 고두밥과 생수를 혼합해 본 술을 담근 후 찌꺼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무려 50일이라는 시간 동안 독을 바꿔가며 숙성시킨다. 모두 다섯 개의 독을 거치면서 술을 담는 방법으로 백일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 마실 수 있다.

이렇게 400년 가까이 이어온 가문의 소장 자료가 국사편찬위와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가 자료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협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을 국민 모금으로 갚고자 했던 국채보상운동 관련 자료를 비롯해 근현대 문서도 포함됐다. 자료는 추후 국사편찬위 전자 사료관 시스템 등을 통해 일반 시민이 볼 수 있도록 한다고 하니 봄꽃처럼 반갑다.

경주 최부자댁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30~오후 5시 30분이며 매월 마지막 월요일과 명절 당일엔 휴관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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