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지

흘러가버렸다 국지성 호우가 쏟아졌다 가방도 마음도 젖었다 가지고 다니던 네 편지를 펼치자 오로라의 악보가 나왔다 네가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언제까지라도 보고 싶었는데 이제 너는 없다 언젠가 학교 앞에서 만난 너는 큰 기타를 메고 있었다 네가 음악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나는 강의실로 가고 있었다 너는 방금 쓴 노래를 들려주겠노라 했다 나는 그런 네 모습이 낯설어서 “나중에, 나중에”라고 했다

위 시의 ‘너’는 화자 자신의 소년 시절이거나 당시 그의 친구일 터, 여하튼 ‘너’와 지금의 화자는 “호우가 쏟아”지고 “가방도 마음도 젖”은 후 단절되었다. ‘너’는 “방금 쓴 노래를 들려주겠노라”며 화자에게 접근하지만, 화자는 “그런 네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가방 속 네 편지-‘오로라의 악보’-는 젖어버렸기에, 이제 ‘너’의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은 화자의 마음에서 사라진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