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신선

택배 받아 내용물 다 들어내고

빈 포장 박스를 뜯어 해체한다.

당초의 얼개대로 접고 붙인 부분들을

일일이 찾아 뜯고 다시 편다.

사람도 접히고 붙여진 몇 굽이 곡절들로

생을 포장해 미움도 사랑도 담아내지만

언젠가는 여기 이렇게 뜯어 펴는 박스처럼 해체되리라.

다만 길고 짧은 시간 그가 앉았다 간 자리엔

따스한 온기만이 남아 식으리라.

여섯 면의 곽이었던 몸피가 분해되면 납작하게 평면으로 쭈그러든다.

그렇게 용도 폐기된 상자가 골판지 낱장들로

그동안의 크고 작았던 삶에 상관없이

원래의 면목대로 고물상 한옆에 쌓인다.

반납되곤 한다.

인생은 ‘포장 박스’ 같다. 삶은 “몇 굽이 곡절들”을 “접고 붙”이면서 포장 박스가 되고, 그 박스 안에 “미움도 사랑도 담아”낸다. 하나 용도를 다한 포장 박스가 해체되듯, 인생 역시 원래대로 “평면으로 쭈그러”져 저 세상으로 반납될 것이다. 인생은 허무한 것인가? 하지만 적어도 “그가 앉았다 간 자리엔/따스한 온기가” 얼마 동안 남아 있다. 눈물겹지만, 그 온기만으로도 삶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