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경수필가
배문경 수필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집으로 들어서는 곳에 늘 늦게까지 불을 밝히던 곳이었다. 주위가 어두워도 환한 빛으로 안심이었다. 가게 하나 불을 껐다고 골목이 암흑 세상이다. 27년간 슈퍼마켓을 지키던 아저씨는 그만둘 때가 되었다며 몇 월 며칠까지 마지막 할인을 하니 필요한 것을 사가라고 덧붙여 말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한다며 말끝을 흐렸다.

경쟁에서 밀린 가게에는 오래된 물건과 새 물건이 섞여 있었다. 아파트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편의점의 불빛이 환하게 빛난다. 손님들이 빛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두 번 얼굴을 보던 사람도 편리한 것에 밀렸다. 왠지 모를 낯선 기분만이 아니라 서글픔 같은 것이 밀려온다. 자신의 건물이었다면 그는 가게를 계속했을지도 모른다.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삶에 의해 완성된다던 승효상의 글이 생각난다.

경주는 기와집이 어느 곳보다 많다. 고도 제한을 두어서 시민들이 제값을 못 받는다고 오래된 아파트를 재건축하자고 해서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던 아파트 값이다. 삼사십 년 된 아파트는 나지막하고 숲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굳이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큰 불편이 없다고 할 정도였지만 바람은 거세게 불어 정보를 들은 외지 사람들이 들불 번지듯이 싼값에 아파트를 사들였다.

그곳에서 판사 딸을 길러낸 언니가 있다. 낡은 것만 생각하고 들린 집은 아파트 옆의 나무가 자라 운치가 있어 보였다. 새소리가 자작하니 들렸고 늘 조금씩 고쳐가며 자신의 세상을 만든 언니만의 공간을 보았다. 집이 따뜻하고 정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 집 주인의 생각과 가치를 집에 불어넣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곱게 만들어진 조각보가 놓인 식탁과 나무문에 달린 손뜨개 커튼과 작은 풍경이 고풍스러웠다. 우리의 삶이 사실 작고 사소한 일을 하루하루 쌓으며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닐까. 덧붙여 “나는 여기가 좋다.”라는 언니의 말에서 자신의 손때가 묻은 집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애정을 쏟은 고택 카페가 경주에 늘어간다. 어쩌면 고택을 잘 활용하는 예가 될 수도 있겠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 흙과 대들보가 드러나 있고 나지막한 처마에 옛 정취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밖의 풍경이 푸른 하늘과 어울려 잔디밭과 내가 좋아하는 나무 백일홍의 꽃이라도 그득하니 피어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워진다. 살지는 못해도 그곳에서 힐링된 넉넉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올 때면 울적했던 마음도 슬펐던 마음도 사그라진 다음이다.

경주에는 독락당이 예전의 모습을 잘 건사하고 있다. 특히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살창과 건물에 달아낸 계정은 건축물로 그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건축학적 의의를 함께 지녀 건축학도들의 발길을 이끈다. 사람들에게 그 가옥의 형태나 쓰임새와 풍경을 둘러볼 수 있도록 열어놓아 더 반갑다. 유지되도록 가문과 피붙이의 노력이 오늘의 우리에게 힘듦을 치유할 공간을 내어준다.

기와집이 주는 넉넉함과 매끈한 곡선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더러 찾아가는 불국사의 사계(四季)는 살아가는 삶의 여정과 닮아있다. 더 좋아지려고 뭉개고 헐고 다시 시멘트로 세우는 일이 아니라 조금은 생활이 불편해도 세월이 녹아든 낡은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지 나에게 스스로 묻곤 한다. 덧대어 그것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애틋한 조언에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자리에 있고 그 자리가 편안하게 보이는 어제의 건축들에서 오늘의 내가 위안을 얻는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이듯이 과거에서 연결된 오늘의 것들에 애정을 갖는 일이 내가 할 일이다. 건축물과 그 안에 깃든 가치와 전통이 같은 의미로 함께 한다는 것은 여간 고맙지 않다. 고택 마당에 널어둔 이불홑청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슬쩍 까치발을 하고 들여다볼 수 있게 나지막한 담장으로 배려함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