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정치권의 ‘사투리 논쟁’이 꼴불견이다. 경상·전라·충청도의 ‘지방 사투리’는 정감이 있지만, 정치꾼들의 ‘패거리 사투리’는 반감만 불러온다.

여당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전·현직 야당대표를 비판하면서 ‘여의도(국회) 사투리’를 쓰지 않겠다고 하자, 야당에서는 법비(法匪)들이 쓰는 ‘서초동(검찰) 사투리’부터 고치라고 했다. ‘내가 쓰면 표준말’이고 ‘남이 쓰면 사투리’라고 하니 ‘내로남불’이다.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은 사투리가 아니라 표준말을 써야 한다. 정치인들의 표준말이란 무엇인가? 권력의 원천인 ‘주권자의 언어’가 표준말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 민심을 모르거나 민심을 왜곡하면 사투리가 된다. 사투리가 매우 심한 정치인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의 모순조차 깨닫지 못한다. 패거리 사투리에 익숙해진 까닭이다.

여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한 위원장이 총선에서 이기려면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국민은 여의도 사투리를 싫어하지만 서초동 사투리나 용산 사투리도 단호히 거부한다.

여의도 사투리를 비판한 그가 ‘여의도 문법’으로 ‘여의도 패싸움’을 벌이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권력에 오염된 패거리 사투리를 쓰면서 그것이 국민의 표준말이라고 우긴다면 누가 동의하겠는가. 여당의 김웅 의원이 “우리 당의 문제는 여의도 사투리가 아니고 용산 사투리”라고 한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

서초동 사투리는 ‘비민주적’이라는 것도 문제다. ‘검사 대 피고인’의 관계,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검찰조직문화에 익숙한 초보정치인들은 서초동 사투리를 고쳐야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다.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던 한 위원장이 경솔한 행동으로 사천(私薦) 논란을 빚은 것도 문제지만, 이를 빌미로 그의 사퇴를 요구한 대통령실의 위법적인 당무개입은 더 큰 문제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말한 대통령이 국민의 60% 이상이 요구하는 영부인의 ‘디올 백’ 의혹 규명을 외면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대통령실은 ‘몰카’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하지만, 국민은 ‘디올 백 수수’를 문제 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니체(F. W. Nietzsche)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여의도 사투리를 쓰는 괴물과 싸우다보면 어느새 서초동 사투리를 쓰는 또 다른 괴물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초동 괴물은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해서 여의도 괴물보다 훨씬 더 저급하고 난폭하다’는 비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괴물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나부터 고쳐야 한다.

2011년 12월, 총선을 4개월 앞두고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박근혜는 “여당으로서 국민의 아픈 곳을 보지 못하고 삶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석고대죄(席藁待罪) 했다. 민심을 제대로 알려면 남의 사투리를 비판하기 전에 먼저 나의 사투리를 돌아보아야 한다. 성찰과 반성을 모르는 패거리 사투리는 표준말을 논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