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노 유적 바닥에 묘사된 이소스 전투 묘사 모자이크. 알렉산드로스와 명마 부케팔로스가 보인다. (나폴리고고학박물관)

기원전 356년 7월 폭풍우가 쏟아지던 날 밤,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는 전쟁터에서 알렉산드로스 출산 소식을 들었다. 이때부터 그는 아내 정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리 속담에 ‘친아버지 도끼질하는 데 가지 말고, 의붓아버지 떡 치는 데 가라’란 말이 있다. 아버지 눈 밖에 난 알렉산드로스 옆에는 어머니 올림피아스가 있었다. 그녀는 어린 알렉산드로스에게 신의 피가 흐른다고 믿게 했다.

기원전 336년, 향년 46세였던 필리포스 2세가 피살당하자, 알렉산드로스는 군부의 강력한 지지로 왕위에 오른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린 그를 얕본 그리스 도시들의 반란을 잠재운 뒤 동방으로 눈 돌린다.

기원전 334년, 22세의 알렉산드로스는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페르시아 원정길에 오른다. 그의 옆에는 동갑내기 명마 부케팔로스가 있었다. 그라니코스강 전투를 시작으로, 미트레스, 판퓨리아, 프리기아, 카파도키아를 점령하면서 손쉽게 아나톨리아를 완전정복한 뒤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해군 본거지 키리키아를 향해 진군하는 도중에도 저항 없이 수도 타르수스에 도착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그곳에서 풍토병 키리키아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여름이 지나면서 회복 기미를 보였다. 이때 다리우스 3세가 대군을 이끌고 진격해 왔다. 알렉산드로스가 이소스로 떠난 뒤였다.

기원전 333년, 두 군대가 이소스에서 마주했다. 군사력에선 우위에 선 다리우스 3세였으나 전술 면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한 수 위였다. 다리우스는 상처를 입고 도망쳤다. 알렉산드로스는 티루스를 7개월이나 걸려 힘들게 점령하고, 기원전 332년 가을, 남쪽으로 내려가 이집트의 나일강 어구에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세운다.

기원전 331년, 페르시아 옛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로 향했다. 이들은 성문을 활짝 열며 자비를 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잔혹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병사들에게 약탈을 허용했다. 약탈은 재물, 살육, 강간, 방화를 동반한다. 죽음을 부르는 비명은 검은 연기와 함께 페르세폴리스 하늘을 메웠다.

신의 피가 흐른다고 믿었던 알렉산드로스는 100여 년 전, 신성한 아테네가 페르시아에 의해 화마에 휩싸였던 과거를 떠올렸다.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예술의 결정체, 화려하면서 왕권을 드높인 왕궁, 장엄한 도시가 화마에 휩싸인 채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즐기며 자신의 신성성을 확인하였다. 이때 그도 엄청난 금은보화를 손에 넣는다.

한편 페르시아 대왕 다리우스는 박트리아 총독 베소스의 배신으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한다. 다리우스 시체를 확인한 알렉산드로스 분노를 샀다.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힌두쿠시산맥 넘어 베소스를 추격했다. 도망친 베소스 역시 그가 그랬듯 스피타메네스 배신으로 사로잡혔다. 그는 코와 귀가 잘려 나가고, 다리우스 3세가 죽은 장소에서 처형된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강행군에 지칠 대로 지친 군사가 문제였다. 전리품도 챙겼겠다, 다리우스 3세가 죽었으므로 고향에 돌아가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동방의 패자가 되고 싶었다.
 

알렉산드로스 주화
알렉산드로스 주화

기원전 327년, 드디어 카이바르 고개를 넘어 인도 펀자브 지방에 들어서면서 히다스페스강에서 코끼리로 중무장한 포로스 왕과 일전을 치른다. 열세에도 불구하고 적의 힘을 역이용해 승리를 거둔다. 이때 알렉산드로스의 명마 부케팔로스가 치명상을 입는다. 기원전 326년 6월, 태어난 지 서른 해, 그와 함께한 지 18년이 되던 해다.

알렉산드로스는 갠지스강 계곡에 도착했다. 그러나 병사들은 미지의 땅으로 들어가는 데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들은 지쳐 있었다. 더한 것은 그들도 인간이기에 가슴에 벌집처럼 숭숭 구멍을 뚫어버린 향수병이었다.

“나를 따르라!” 알렉산드로스의 외로운 외침은 의미를 잃었다. 결국 대단원의 원정을 마쳐야 했다. 선택! 병사들에겐 귀향이란 정곡을 찌르는 판단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발길을 돌렸다. 피를 부르며 질풍노도처럼 밀고 왔던 그 길을 내려 걷는 그의 가슴은 허무 자체였다.

정신력이 시들하면 체력도 함께 떨어진다. 그의 신은 신으로서 영역을 딱 거기까지만 허락했다. 회향을 거듭하며 바빌론에 도착했다. 일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알렉산드로스는 부케팔로스가 죽은 3년 뒤 기원전 323년, 33살의 나이로 말라리아에 걸려 그곳에서 객사한다.

메타인지, 즉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가 중요하다. 알렉산드로스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신의 영역에 가둠으로써 기능을 잃었다. 풍토병에 걸렸을 때, 부케팔로스가 죽었을 때, 부하들이 회향을 주장했을 그때 하늘의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후 치세를 쌓든, 악정을 펼쳤든, 33세 젊은 나이로 객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