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오래전 나도 당신도 없고 그러니 어떤 단어도 추억할 수 없는 골목에 모두 잠들어 아무도 깨우지 않게 생활이 돌아눕는 느릅나무가 있는 골목에 아무도 태어나지 않아 우는 것도 없는 그 가만 새벽에 어린 부부는 서로를 꼭 끌어안았을 것이다 고요는 잎보다 먼저 꽃을 흔든다

우리는 살다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어떤 고요의 세계와 마주할 때가 있다. 순수한 현재만이 있는 세계. 생활 속에 있는 생활 너머의 세계. 추억도 없고 “아무도 태어나지 않아 우는 것도 없는” 저 “느릅나무가 있는 골목”이 그런 세계일 테다. 하나 그 현재의 고요로부터 삶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가만 새벽에”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어린 부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고요가 흔드는 꽃의 아름다움.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