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명문의 한옥과 정원으로 빚은 ‘공간·오브제 건축'의 백미

파티오 정원. 
파티오 정원. 

황리단길은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 빠짐없이 들르는 곳 가운데 하나다. 
거기에 지난해 12월 경주시 주최 ‘제10회 경주시 건축상’ 전통 한옥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한옥 호텔 ‘헤리티지 유와’(경주시 포석로 980-26)가 있다. 이곳은 전통문화와 힐링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와 인식 속에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헤리티지 유와’의 모양은 다른 한옥 호텔과 확연히 다르다. 왜 저렇게 특이한 모습일까. 지난 16일 ‘헤리티지 유와’를 설계한 손명문 건축가를 만나 그 궁금증을 물어봤다.

 

‘휴(休)’·‘낙(樂)’·‘기(氣)’ 모티브로
‘ㅜ’자·‘ㅁ’자형 한옥군 비대칭 배치
 휴양림 산책하듯 호텔 한바퀴 돌아
 정자형 대문과 연결된 정원속으로
‘신한옥’ 건축풍경 연출해낸 걸작품 

“한옥과 사색의 정원이 공존하는
  경주 정체성 담긴 마을 만들고파” 

 

손명문 건축가
손명문 건축가

-‘헤리티지 유와’라는 호텔명이 좀 독특하다. 
△‘유와’는 걸음 유(迶) 누울 와(臥) 자를 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을 빼고 누운 듯 편안한 휴식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신라 삼국통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의 생가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지역의 정체성에 입각해 디자인했다. 신라의 유적이 잠들어있는 경주 월성지구와 대릉원 지구, 그리고 경주의 핫 플레이스 황리단길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다. 헤리티지는 번역하면 ‘인류 문화유산’이다. 건축주 이상춘씨가 주변 문화유산권에서 편안한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호텔명을 지었다.  

 

□ 손명문 건축가의 역작인 ‘헤리티지 유와’
‘헤리티지 유와’는 건축가 손명문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옥과 가든디자이너 황지해가 경주 월성의 해자에서 출토된 한국 자생종의 씨앗을 모티브로 조성한 정원들이 어우러져 있다. 호텔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자연휴양림을 산책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 받는다. 
‘헤리티지 유와’의 콘셉트는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에 관한 설화로부터 출발한다. 백제와의 전쟁을 앞두고 자신의 집 앞을 지날 때 가족들이 모두 문밖까지 나와 장군이 잠시라도 집에 들러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은 그대로 집을 지나쳐 가고 부하를 시켜 자신의 집 우물물을 떠 오게 한 다음 그 물을 마시며 “우리 집 물맛이 아직도 옛날 그대로구나. 됐다. 가자”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한옥마을 전경.
한옥마을 전경.

‘헤리티지 유와’는 비록 ‘한옥’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모든 면에서 전통적 한옥과는 조건이 바뀐 동시대적 산물이다. 본 부지는 역사문화환경보존육성지구로 지정돼 한옥의 형태로만 건축이 가능한 지역이다. 부지 주변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경관-남산·선도산·반월성·재매정·월정교·남천 등 주변부 자연·역사·사적지-의 남다름, 게다가 부지의 배를 가르는 듯한 ‘남북 관통의 공공도로 설치’ 등 ‘헤리티지 유와’의 환경조건은 모두가 새롭다. ‘헤리티지 유와’를 두고 조선조 유교·성리학 기반의 전통 한옥을 넘어 ‘신한옥’ 건축 풍경을 연출해 낸 장인의 탁월한 걸작품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옥을 정의하면.
△한옥은 자연에 순응하는 집이다.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져 사람들에게 평온함을 준다.‘헤리티지 유와’는 걸음을 멈추고 쉬어가라는 뜻이다.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황지해 작가의 '작가정원'.
황지해 작가의 '작가정원'.

□ 손명문의 ‘공간건축’과‘오브제 건축’

손명문이 ‘헤리티지 유와’를 디자인하며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한옥의 전통적 유전형질을 동시대에 맞는 새로운 유전형질로 변이시키는 일이었다.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지친 삶을 치유하기 위해 유와를 찾는 여행객, 그들이 곧 ‘유와’의 주인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다. 손명문은 ‘휴(休)’·‘낙(樂)’·‘기(氣)’ 즉 쉬고, 즐기고, 다시 활력의 정신을 찾아 몸과 마음을 치유해 가는 것을 한옥호텔 유와가 품어야 할 기준으로 삼았다.

언뜻 보면 한옥인 듯 한데 그 한옥은 전혀 새로운 유전형질을 품고 있고, 단순한 한옥 건축의 모습인 듯 한데 마치 건축으로 풀어낸 원림처럼 하나의 새로운 ‘건축 풍경’으로 승화시켜 낸 원천이다. 그래서인지 손명문이 열어젖힌 한옥 호텔 유와의 건축은 동시대 한옥이 나아가야 할 길, 또는 미래 한옥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법, 어쩌면 본질적으로 한옥이 지녔던 구시대적 관념의 벽을 극복하고 동시대 한옥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계획 과정에서 손명문이 쏟은 고민의 흔적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는 부지를 관통해야만 하는공공도로를 전통 한옥에서는 숨겨져 있는 ‘축(軸)’의 개념을 밖으로 노출해 ‘돌담 골목길’이라는 실용 미학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이 축선을 따라 양쪽 부지에 독특한 형태의 ‘ㅜ’자형과 ‘ㅁ’자형의 평면을 가지는 한옥 군을 배치해 한옥호텔 유와가 전체적인 좌우 비대칭의 균제미를 이뤄내는 단지계획으로 그렸다. 
 

정자형 대문.
정자형 대문.

또한 비워놓은 땅을 ‘건축하고 남은 자투리 공간이 아니라 건축물의 가치와 필적하는 또 다른 의미와 유형을 갖는 ‘무형의 건축’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공간건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문을 정자(亭子)형으로 대체함으로써 전통 한옥에서 낯선 자와의 경계로 여겼던 대문을 초대와 환영의 개념으로 승화해 냄으로써 ‘오브제 건축’이라는 신개념 건축의 길을 열었다. 
고색의 돌담과 함께 야생의 자연처럼 다지(多枝)의 관목과 나무들이 위·아래로 서로 휘어지고 엮이고 그 틈 속에서 자연스럽게 꽃으로 피어나는 야생화들이 어울려 마침내 이 정원들은 상호 연결된다. 한옥과 통합돼 전체적으로 풍부한 자연과 어우러지는 미(美)가 살아 있는 ‘원림 건축’의 탄생으로 마무리된다. 

 

돌담골목길.
돌담골목길.

□ 한옥과 정원의 미학

‘헤리티지 유와’ 입구에 도착하면 허리를 거의 90도로 꺾은 듯한 특이한 형태의 수목과 자생종 나무들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입구 정원에 눈길을 빼앗긴다. 독채로 이뤄진 프리미엄 객실과 하나의 안뜰을 공유하는 여러 개의 스탠다드 객실을 구분하는 정원으로, 입구부터 ‘헤리티지 유와’ 가장 안쪽에 위치한 ‘작가정원’까지 직선으로 조성돼 있다. 

입구에서 한 발짝 들어서면 나무 뒤에 가려져 있던 기와지붕 형태의 ‘지붕 난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은 소위 ‘불멍’을 하는 곳으로, 날이 어두워지면 장작을 태워 불의 생명력을 느끼고, 낮에는 정원 곳곳에 세심하게 수놓은 우리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헤리티지 유와’의 가장 안쪽에는 황지해 작가의 ‘작가정원’이 숨어있다. 경주 월성의 해자에서 출토된 오얏나무, 가래나무 씨앗이 주된 정원의 구조를 이룬다. 이 나무들은 입구에서부터 나란히 이어지는 세 개의 독채에도 식재돼 있으며, 이 독채들과의 연장선에서 정원에는 보이지 않는 네 번째 집을 개념예술로 승화했다. 이 정원은 고(故) 이어령 선생이 황지해 정원디자이너에게 준 ‘화왕계’ 아이디어와 김유신 장군의 우물 ‘경주 재매정’을 편집해 만든 정원이기도 하다.

-경주에서 멋진 작품을 많이 남겼다. 다음 계획은. 
△황리단길 주변 마을에 경주의 정체성을 더 담아보고 싶다. 한옥과 사색의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선조들의 혼이 서려 있는 땅 위에 자유와 낭만을 그려 넣어야 그 멋을 제대로 살리고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의 발길을 모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비우면서 그리는 손명문의 철학
손명문의 신한옥 건축 풍경 감상의 첫걸음은 이처럼 사람을 순간적으로 느끼고 지각하고 인지해서 동시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들고, 그것을 기제로 의아함과 낯섦이 안도의 쾌감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감흥 유발, 유혹의 건축계획과 디자인 마법을 구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조세환 한양대 명예교수(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는 평론에서 “동·서편 한옥 군의 공간을 기묘하게 엮어내는 건물 평면과 배치 형태, 거기서 빚어지는 절묘한 유형의 마당 공간(空間), 모든 것들의 조합을 통해 자연이 빚어내는 생명의 프랙탈 미학(Fractal Aesthetics)으로 승화돼 발현되고 있다”고 평한다. 조 평론가는 “이 마법 구사의 기제로 사용된 것이 바로 ‘공간건축(Space Architecture)’과 ‘오브제 건축(Object Architecture)’의 두 요소”라고 읽어낸다. 

건축할 수 있는 땅을 건축하지 아니하고 비워서 또 다른 건축 의도의 공간으로 건축하는 것, 그것도 분명한 건축공간의 한 장르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외부공간으로 디자인하는 것, 이것이 이런 바 ‘공간건축’의 정의다. 또 한편으로 ‘정자형 대문’처럼 시선을 유도하는 랜드마크로 작동하되 단순히 시각에 머물지 않고 공간적 행위의 매개적 기능을 수행하는 건축, 이른바 ‘오브제 건축’이다. 손 건축가는 고향 경주에서 그간 이 건축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남모를 고민을 거듭해 왔다. ‘헤리티지 유와’ 외에도 그의 대표적인 한옥 작품인 황남관, 소설재, 월성과자점, 위연재, 경주 테라로사 등에 그 흔적이 쌓여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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