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인 수필가
김규인 수필가

노숙인 A 씨는 다른 노숙인 B 씨와 술을 마시며 말다툼하다가 흉기로 위협한 혐의를 받는다. 흉기는 스스로 발로 밟아 부러뜨렸으나 이를 지켜본 시민의 신고로 구속됐다.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아서 구속 후에 재판까지 받게 됐다.

A 씨는 부모의 사망으로 30대부터 길거리를 떠돌고 빈 박스와 빈 캔 등의 재활용품을 모아 생활비를 벌어서 홀로 살았다. 변변찮은 벌이에 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러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나마 책 읽기는 혼자 보내는 고단함과 서러움을 달랬다.

판사는 A 씨가 현장에서 흉기를 부러뜨렸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고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하여 실형을 구형하지 않았다. 재판 후 “건강을 챙기라”는 당부와 함께 중국 작가 위화의 대표작인 ‘인생’과 10만 원을 주었다. “어머니 산소를 꼭 찾아가 보시라”는 말에 A 씨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기댈 곳 없어 보이는 노숙인에게 다가간 말은 가슴 깊이 파고든다. 그가 흘리는 눈물은 그 말에 대한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말 없는 대답이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얼어붙은 몸과 마음도 삭막한 세상도 녹일 것이다. 요즈음 세상을 살면서 가슴에 닿는 마음을 느끼는 게 얼마 만인지. 뉴스를 접한 내 마음도 따스해진다.

삭막하기만 할 것 같은 세상에서도 자세히 둘러보면 이렇게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웃돕기 성금을 맡기고, 이웃을 위해 먹거리를 나누고, 노숙인을 위해 생필품을 제공하는 사람들. 그들이 전하는 마음 때문에 이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 된다.

세상을 바꾸는 건 너그럽고 따스한 마음이다. 판사와 노숙인,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에서도 판사의 따뜻한 마음은 차디찬 길거리를 떠도는 노숙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작은 선물 속에 담긴 따스한 마음을 마주한다면 누구나 가슴을 열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인터넷에서 상대를 향한 가시 돋친 말이 난무하더라도 말이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논의가 한창이고, 국민과 동떨어진 정치인들의 대결 의식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돈의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 서민들의 생각은 깊어진다. 확전 일로에 놓인 전쟁이 가슴을 조여오지만 그래도 우리는 웃으며 살아야 한다. 한 손은 자신을 위해 쓰고 남은 한 손은 이웃을 위해 내밀어야 한다. 그 손으로 따스한 온기를 전해야 한다.

새해를 맞아 밤이 점점 짧아진다. 이렇게 날이 밝아지면 밝게 웃는 날도 많아지리라.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나누고 더 행복한 날들이 늘어날 것이니. 그렇게 모두가 웃는 날이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삶이 팍팍하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어려움을 이긴 사람들의 삶이야말로 더 대단한 것을 우리는 안다.

시간, 공간, 인간.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행복은 관계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시간과 공간의 축은 사이를 강조한다. 따스함을 전하는 판사와 노숙인의 관계처럼 말이다. 오늘 서로 기대어 선 사람 인(人) 자의 의미를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