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20대 청춘일 때 시인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리되지 못했다. 세월이 더 흐른 다음에는 혁명가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그 또한 헛된 망상이 되고 말았다. 시인과 혁명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어휘인가?! 그래서 이육사 시인을 무척 좋아하는 것이다. 시인이되 혁명가였던 이원록(1904∼1944)을 어찌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언젠가 안동에 있는 이육사 문학관을 찾은 일이 있었다. 대구 동부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이육사 시인의 생애와 문학을 조명하는 것이었다. 어쩌다 그 일을 맡게 되었기로 대구에서 안동을 오가는 전세버스와 이육사 문학관 앞마당에서 시민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기억에 있음은 흐뭇한 추억이었던 모양이다.

각설하고, 시인을 동경하던 나는 문학을 업으로 하는 일에 평생 종사했지만, 여전히 시인을 향한 꿈은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래선지 시인을 만나면 언제든 유쾌하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가깝게 지내는 국문과 교수이자 시인인 친구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시인으로 평생을 산다는 일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일까, 생각한다.

그런 시인이 가까이 있으니 나 또한 복 많은 삶을 부여받은 것이다. 어느 날 그가 최면술 이야기를 하길래 귀 기울여 듣는다. 호기심이 아주 많은 그가 서울에 가서 최면술 대가(大家)에게 적잖은 비용을 들여서 최면술을 배웠다는 게다. 그리하여 시인의 아내에게 시험 삼아 해보았더니, 여러 가지 전생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더라는 흥미진진한 얘기를 내놓는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에게 최면을 부탁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무려 30분이 넘도록 시도했으나, 최면은 끝까지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분별심이 강하거나, 자아가 고집스러운 사람에게는 최면이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게 시인의 설명이다. 말을 듣고 보니 상당히 설득력 있다. 나는 분별심이 승하고,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돋는 것처럼 고집이 세기 때문이다.

전생도 궁금하거니와 최면에 걸린 자아가 속속들이 털어놓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못내 궁금했으나, 도무지 먹혀들지 않는 최면 때문에 아쉬움만 커진다. 물론 나는 십수 년 전에 인터넷으로 전생을 확인한 적이 있기로, 전생이란 것이 낯설지 않으나, 최면으로 풀릴 오래전 지난날의 봉인이 무척이나 궁금한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시인과 혁명가의 공통점은 역사에 투철하고 지적인 호기심과 일상적인 실천에 앞장서는 것이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끝까지 파헤치고, 올바른 대의를 위한 이론과 실천에 앞장서며, 그것을 위한 토대인 지적 호기심을 생의 끝자락까지 가져가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점에서 최면술을 배우러 서울까지 왕복하면서 배워온 시인의 투지가 놀랍고 가상한 것이다.

그 같은 왕성한 호기심 실행은 아닐지언정, 호기심 충족마저 온전히 하지 못하는 알량한 분별심과 자의식을 돌아보노라면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 엄청나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면 내려놓고 대붕처럼 자유롭게 날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백일몽을 꾸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