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형

빛의 총량이 운명의 총량이라고 말할 수 없다

보라가 고혹적인 것은

기다릴 줄 알기 때문일 거다

꽃집 주인은 보라색 꽃이 강하다고 했다

천천히 시든다고 했다

멀어져가던 너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피아노가 그렇듯

모든 것을 껴안고 있는 눈동자 (중략)

천천히 시드는 색감의 운명을 사랑하고 싶다

여름꽃을 한 아름 안겨주고 너는

난생처음 보는 여행자처럼 오른쪽 등의

지도 무늬까지 지우며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더 진하고 더 어둡고 더 달콤한 여름꽃의

전조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거나 끝난다

위의 시에 따르면 강함은 ‘천천히’ 시들 수 있는 능력이며 그 능력은 “기다릴 줄” 아는 데서 온다. 그리고 그 능력에서 보라색의 ‘고혹’이 발산된다. 시인은 “지도 무늬까지 지우며” “멀어져가던 너의 뒷모습”에서 한 아름 보라색 ‘여름꽃’을 떠올린다. “모든 것을 껴안고 있는” 그 모습이 “천천히 시드는 색감의 운명”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여름꽃의 보라색은 “이야기가 시작되거나 끝”나는 전조를 드러내기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