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환

저것이 헛것인 줄 알기까지

한 세월이 지났구나

(중략)

벼락, 천둥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

젖은 신발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

모래도 헛것이고, 티끌도 헛것이고

흰 살결도, 검은 눈물도, 꽃도, 안개도

절집도, 성당도, 학교도, 국가도

아직 오지 않은 천년도

모두 헛것이었구나.

헛것인 줄 알기까지 한평생이 걸렸구나

모래뿐만 아니라 티끌마저 ‘헛것’이라는, 즉 “모두 헛것”이라는 ‘헛것’의 도저한 존재론을 펼치고 있는 시. 시인은 아름답다고 느꼈던 대상도, 추구해왔던 목적도, 그의 삶을 둘러싸고 있던 국가, 종교, 학문도 ‘헛것’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평생 그를 이끌어온 가치들을 뒤엎는 처절한 깨달음이겠다. 그런데 그 깨달음에는 사람의 ‘한평생’이란 결국 헛것을 따라가며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녹아들어 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