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 경운대 교수
최선희 경운대 교수

“늙은이 너무 불쌍해하지 마라.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그래주고 싶어 쓴 것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게 강변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사는 것을 맛있어하면서 살기 때문에 저절로 우러난 소리 같아서 대견할 뿐 아니라 고맙기까지 하다. 물론 내가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단맛만은 아니다. 쓰고 불편한 것의 맛을 아는 게 연륜이고, 나는 감추려야 감출 길 없는 내 연륜을 당당하게 긍정하고 싶다.”

박완서 작가가 예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 노년의 삶을 형상화한 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서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어쩌면 노년을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작가의 이런 각오는 모든 노년세대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지나온 삶은 수많은 희로애락과 함께 켜켜이 쌓아온 경험으로 숙성된 내공을 가졌지만 현실적으로 용인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존재가치를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8.5%로 고령사회이고 2024년 내년이면 노년세대가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어 초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 한다. 이런 속도로 인구 노년화가 진행되면 노인 평균연령이 100세가 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고 그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이런 인구 고령화 현상은 자칫하면 노인차별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노인차별주의란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우리가 노인을 향해 갖는 부정적인 태도와 행동을 의미한다. 실제 학생들에게 ‘노인’ 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보라 했더니 “고지식하다, 보수적이다, 잔소리와 불평이 많다, 쇠약하다, 지루하다” 등의 부정적인 표현을 많이 했다. 이런 인식은 세대 간 갈등의 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노년의 긍정적인 모습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

노년세대가 가진 가장 긍정적인 태도와 의식은 무엇인가. 바로 인생의 연륜이 가진 아름다운 내면세계일 것이다. 연륜은 나무의 나이테와도 같다. 무수한 나이테를 가진 늙은 수양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며 우리에게 시원한 안식처를 제공하듯이 주름진 노년의 여유로운 표정은 우리의 힘든 삶을 보듬어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이 경험한 인생의 지혜가 우리들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강도는 다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무르익은 그들의 경험은 저마다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다.

지난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었고 이 달 10월은 경로의 달이기도 하다. 매년 이맘때면 100세를 맞은 노인을 위한 청려장(장수지팡이) 전달, 노인복지 증진을 위해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표창, 영정사진 촬영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인구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 고령사회를 앞둔 노년의 시대에 이런 일회성 행사보다 노년의 연륜을 인정하고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한 구체적 정책을 기대해본다.

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게 될 노년의 삶, 그대로의 존재가 인정되어 권리와 의무가 부여될 때 그들은 연륜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보물을 풀어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