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리’

박한선 지음·인문
바다출판사 펴냄

“구석기말 인류는 고작 400만 명에 불과했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약 80억에 이른다. 인간은 의기양양하다. 이렇게 번영한 건 인간의 지적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실패는 여행비둘기처럼 갑자기 온다. 인류의 유전자는 서로 아주 비슷비슷해지고 있다. 유전자가 동일한 쌍둥이는 대개 동일한 질병에 걸리고 동일한 이유로 죽는다. 쌍둥이가 되어 가는 인류는 여행비둘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

진화인류학자인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신간 ‘인간의 자리’(바다출판사)에서 인간의 우월함이라는 허위를 버려야 인류가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공존 없는 독존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인간의 자리는 자연의 사다리 꼭대기에 있지 않고 동물의 왕국 어딘가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존의 진화론에 의문을 던진다. 짝짓기를 예로 들어, 일부 진화론자는 수컷이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것에 혈안이 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는 한 사람과 백년해로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진화한 인간 본성은 하나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는 인간 본성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기능으로 진화한 전략인지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랑, 양육, 우애, 동성애, 협동, 자원 저장, 이동성, 영양 섭취, 노화와 죽음, 공격성, 건강과 혐오 등 보편 행동에 담긴 인간의 특정 전략과 그것이 진화한 생태적 맥락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들은 이제껏 나온 그 어떤 진화론 책에서도 볼 수 없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가득하다.

“사랑은 장기적 보상이다, 입양은 인간화된 탁란이다, 출산은 투자이고 자식은 보험이다, 평화로운 사회라는 건 서로의 거리가 멀 때나 가능하다, 동성애가 첫 번째 사랑이다, 우리는 먹으려고 산다, 역마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현대 사회에서 더 불행하다, 저축은 강박증이다, 덕과 이타성은 희생이 아니라 체외 자원 저장이다, 노화와 죽음은 살기 위한 것이다, 혐오는 면역 기능이다” 등등.

저자는 다종다양한 동물 이야기를 인간 이야기와 교차하며 이런 도발적인 인간 행동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동물도 결혼하고 이혼하며 새끼를 키우거나 버리고 노래하고 협력하며 재산을 모으고 늙고 병든다. 우리가 인간적 특징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동물도 갖고 있다. 동물의 특성을 동물이 진화한 환경에서 갖게 된 전략으로 파악하는 만큼 인간의 특성 역시 그렇게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특성이 아니라 ‘전략’으로서의 인간 행동을 다루면서 인간 중심인 편견을 버리도록 유도한다. 인간 본성을 아는 것은 그 본성을 되도록 모두에게 그리고 유리하게 바꾸도록 유도하는 통찰을 얻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인간의 전략적 본성을 아는 것은 우리의 행복과 직결된다. 배신과 질투가 유리한 전략인 사회는 고통스럽다. 비친족 입양에 따른 아동학대와 영아살해가 만연한 사회는 끔찍하다. 서로를 공격하고 외부인을 배척하는 사회는 고립되어 절멸한다.” /윤희정기자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