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지형

4세기 중엽 중국에 있었던 옛날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산속을 헤매던 남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낙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풍요로운 논밭이 이어져 있고 사람들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며칠간 머물다가 남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 가려고 하지만 낙원은 두 번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갔던 곳은 무릉도원이었다. 강원도 영월에도 무릉도원이 있다. 원래는 영월군 수주면이었는데 주민들의 요청으로 무릉도원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물론 무릉도원처럼 이상향은 아니지만 자연이 수려하고 사람들은 순후하다. 억겁의 세월이 만든 기묘한 풍경들이 가득하다. 초여름 무릉도원에서 잠시 시름을 잊고 자연 속에 머물러 보면 어떨까.

 

수려한 풍광의 주천강변을 거닐다 보면

영겁의 시간이 빚어낸 요선암과 마주해

신선을 맞이하는 정자란 뜻의 요선정엔

숙종이 내린 어제시·마애여래좌상 눈길

평창강 끝 자연이 만든 또 하나의 걸작이

삼면 바다인 한반도 빼닮은 ‘한반도 지형’

요선암
요선암

◇절묘한 너럭바위 요선암에 경탄

무릉도원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주천강이 흐른다. 주천강은 강원 평창과 횡성의 경계에 솟은 태기산(1261m)에서 발원해 남한강까지 물길을 밀어낸다. 영월을 대표하는 동강과 서강 못지않게 풍광이 수려하다. 주천강의 물결은 급하지 않다. 강변 구석구석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천렵을 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영겁의 시간이 빚어낸 놀라운 풍경에 도달한다. 요선암(邀仙岩)으로 불리는 묘한 바위덩어리들에 관한 이야기다. 안평대군, 김구, 한호와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 불린 봉래 양사언이 평창군수를 지낼 때 이곳의 풍광에 반했다. 양사언은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으로 ‘요선암(邀仙岩)’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거기서 이름이 유래했다. 세월이 흘러 글자는 찾아볼 수 없지만 양사언을 감탄하게 만든 풍경은 그때 그대로다.

강가에 널브러진 너럭바위가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신묘한 자연의 솜씨에 경탄하게 된다. 바위를 만져 보면 도자기처럼 매끈한 것이 마치 조각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깎아놓은 것 같다. 족히 50m는 돼 보이는 주변의 강바닥이 온통 기묘한 바위로 뒤덮여 있다. 바위는 모두 오목하게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를 돌개구멍 혹은 구혈(穴)이라고 한다. 돌개구멍은 암반의 오목한 곳에 물이 소용돌이칠 때 모래나 자갈이 함께 섞여서 암반을 마모시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돌개구멍은 지름이 1m에 달하는 것도 있고 깊이가 3m에 이르는 거대한 것도 있다. 파도처럼 너울너울 곡선을 그리기도 하고, 거대한 이무기가 지나간 것처럼 굵은 원통형의 모습도 보인다. 기묘한 풍경이다 보니 무수한 전설이 담겨 있다. 신선들이 탁족을 했다거나 선녀들의 목욕탕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요선정
요선정

◇숙종 어제시 걸려 있는 요선정

요선암에서 10분 거리에 요선정(邀仙亭)이 있다. ‘신선을 맞이하는 정자’라는 뜻의 이름과 달리 요선정은 단출하기 이를 데 없다. 요선정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 19대 임금 숙종의 어제시(御製詩)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했다. 정자보다 유명한 것은 현판이다. 숙종이 내린 어제시 현판이기 때문이다.

숙종의 어제시는 원래 영월군 주천면 청허루에 걸려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됐다. 숙종에 이어 즉위한 영조가 숙종의 어제시를 직접 찾아내 다시 쓴 뒤 편액을 내렸다. 일제강점기에 청허루가 쇠락하고 걸려 있던 편액이 일본인 손에 들어가자 주천의 유지들이 편액을 재구입해 요선정에 봉안했다. 요선정 안에 영조가 쓴 숙종대왕 어제시와 정조 어제시 편액이 같이 걸려 있다.

요선정 옆에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크기 3.5m의 석불은 머리와 어깨 부분이 바위에서 빠져나오려는 기묘한 형태로 새겨져 있다. 바위에서 나와 대중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부처의 마음을 담은 것일까. 요선정은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마애불 뒤편으로 돌아가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주천강과 법흥계곡의 물줄기가 내려다보이고, 온통 푸른 산줄기가 겹겹이 이어진다. 절벽 끝자락에는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주천강의 풍경을 더욱 고즈넉하게 한다.

◇평창강 끝머리에 있는 한반도 지형

무릉도원에서 10㎞ 정도 떨어진 평창강 끝머리에서도 자연이 만든 또 하나의 걸작을 볼 수 있다. 한반도면 옹정리에 있는 한반도 지형이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를 쏙 빼닮아 ‘한반도 지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강이 굽이쳐 흐르는 한천의 침식과 퇴적 현상이 반복돼 만들어진 지형이다. 한반도 지형을 평지에서 보면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 지형 주차장을 찾아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야 한반도 지형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지붕없는 박물관의 도시 영월

영월에는 20여 개의 공·사립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어‘지붕 없는 박물관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이 중에서도 국제현대미술관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70개국의 조각 작품 350여 점과 60여 점의 상설 전시 등 수준 높은 다양한 작품이 마련돼 있다. 폐교한 삼옥초등학교를 활용해 만든 미술관으로 야외조각공원이 잘 꾸며져 있어 영월의 멋진 경치와 함께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세계의 음악과 악기를 통해 인류애를 나누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경기 파주 헤이리와 영월에 각각 자리 잡고 있으며,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영월관은 100여 개국 2000여 점의 악기를 소장하고 있다. 동아시아, 인도·서남아시아, 중동·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남태평양·대양주 등 문화권별로 악기를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영월종교미술박물관
영월종교미술박물관

종교미술박물관은 프랑스, 독일, 로마의 목공방에서 도제 시절부터 평생 이어져온 최바오로 작가의 성화와 그만의 창조적 조각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수장고에 있는 약 600점의 작품을 시기에 따라 교체하면서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은 부산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으로, 예수상의 크기가 3m가 넘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호야지리박물관
호야지리박물관

호야지리박물관은 지리 교육에 평생을 바친 호야 양재룡 선생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지리 테마 사설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우리나라 광물 자원의 천연 표본실이자 카르스트 지형, 석회암 동굴 등 각종 지리 지형 현상이 집약돼 있는 영월군에 있다. 지리학의 역사와 종류, 체험 등 지리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 직접적인 체험과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는 호야지리박물관은 단순한 유물의 전시 진열과 관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고 학문적 원리를 깨달을 수 있는 사회 교육 현장을 지향하고 있다.

 

인도미술박물관
인도미술박물관

인도미술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바탕으로 수많은 신화와 의식 속에 인도만의 독특한 전통을 고수해 오고 있다. 인도에는 찬란했던 오랜 역사의 유산으로 가히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유적들과 미술품들이 남아 있다.

인도미술박물관은 1981년부터 인도미술에 매료되어 인도에 살고 여행하며 여러 차례 인도사회와 인도인의 삶을 주제로 한 개인전을 개최한 미술가 박여송 관장과 인도 지역연구를 하는 남편 백좌흠 교수가 그동안 하나씩 모아온 다양한 인도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인도미술 기법들에 대한 체험과 헤나 바디페인팅, 인도 의상문화 체험, 인도 홍차 체험 등 다양한 인도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영월=글·사진 최병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