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경 내 사찰과 배치 달라“…직선·곡선 어우러진 연못 확인”
죽은 이 명복 빌던 귀족층 ‘원찰’로 추정“…내일 현장서 설명회

보물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 전경. /문화재청 제공
보물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 전경. /문화재청 제공

그간 역사 기록으로 존재하던 경주 미탄사(味呑寺)의 규모와 건물 배치 방식 등이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2018년부터 보물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 주변을 발굴 조사한 결과, 사찰이 차지하는 구역과 (건물) 배치를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미탄사는 고려 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이다.
고려 시대 승려인 일연(1206∼1289)이 1281년 편찬한 ‘삼국유사’에는 ‘지금 황룡사 남쪽에 있는 미탄사’라는 기록이 있어 문헌으로 그 존재가 알려진 바 있다.

2013년 발굴 조사에서 ‘미탄’(味呑)이라는 글자가 있는 기와가 나와 실체가 확인됐고 절의 본당인 금당(金堂), 강당, 남문 터 등이 드러났다.

그간의 조사 결과, 미탄사는 8세기 후반부터 13세기까지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신라 왕경(王京·수도를 뜻함)이나 지방 거점 지역에서는 원활한 통치를 위해 각 지역을 일정한 영역으로 나누는 방리제(坊里制)를 적용했는데, 미탄사는 방내 도로로 구획된 곳에 있었다.

절의 규모는 세로 약 160m, 가로 약 75m, 면적으로 따지면 1만2천000㎡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발굴 조사를 맡은 불교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미탄사는 경주 월성과 황룡사지 사이에 있었으며, 방리제 기준으로 보면 한 방의 절반 정도 규모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미탄사 안에는 삼층석탑을 비롯해 여러 동의 건물과 연못이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사찰은 삼층석탑과 금당으로 구성된 예불 공간, 승려들이 거주하는 승방과 부속건물 등으로 이뤄진 생활 공간, 정원 안에 있는 연못(園池·원지) 일원의 후원 등으로 나뉘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탄사는 사찰 내 건물 배치, 건립 목적 등에서도 연구할 만한 가치가 크다.
미탄사는 문으로 추정되는 터와 탑, 금당이 남북으로 배치돼 있다.

그러나 금당은 탑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한 축선을 벗어나 있어 신라 왕경 내에 있었던 사찰의 전형적인 구조와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불교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미탄사가 있었던 위치로 보면 당시 귀족이나 상류층 등이 있었던 지역“이라며 ”귀족층이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원찰(願刹)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점은 통일신라시대 왕경의 사찰 구조와 형태를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최근 조사에서 처음 확인된 원지는 약 900㎡ 규모로 조성됐으리라 추정된다.연못의 일부는 직선 형태지만, 서쪽과 남쪽 벽은 자연 지형을 이용해 조화를 이룬 것으로 파악됐다.

문화재청은 이번 조사를 통해 삼층석탑의 건립 시기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기존에는 나말여초(신라 말기∼고려 초기) 시기의 석탑으로여겨졌으나, 아랫부분을 조사한 결과 8세기 후반에 건립됐음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30일 오후 2시 발굴 조사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