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도시에서 해양관광역사문화도시로

포항시립박물관 건립추진 자문위원회 회의 모습. /포항시 제공

2026년 개관을 목표로 건립 예정인 ‘포항시립박물관’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박물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를 앞두고 있다. 올해 말 평가를 통과하면 실시 설계, 조직 구성 및 예산편성 등 향후 추진 과정에 돌입하게 된다.

반세기 넘도록 지역의 역사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연구하는 구심점 역할을 담당할 공간과 기관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포항시는 지역 여론을 수렴해 지난해부터 포항시립박물관 건립을 추진해왔다. 인구 50만의 경북에서 가장 큰 도시인 포항시가 ‘철강산업도시’에서 ‘해양관광역사문화도시’로 변신하기 위한 시립박물관 건립을 앞두고 시와 시민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포항시립박물관 건립은 포항 시민의 오랜 숙원사업 중 하나다.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담고 미래 비전을 제시해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외지인들에게 포항을 알리는 전진기지 역할을 할 시립박물관 건립에 대해 중앙정부는 적극적으로, 그리고 시급히 응답해야 할 책무가 있다.

 

경주에 있는 신라비·대전의 나무화석…
전국 곳곳 흩어진 문화재 한 데 모으고
지역 역사문화 보존·정체성 확립 위해
2026년 개관 목표로 사업 준비 총력전

국립중앙박물관장·문체부장관 역임
최광식 명예교수 등 매머드급 자문단
‘유물 확보·예산·주제’ 지적 사안 보완
특색있는 전시방법·콘텐츠 개발 논의

지난 2009년 중성리 신라비 발굴 이후
사실상 15년째 이어지는 유치 목소리
포항시, 빈틈 없이 절차 밟아 갈 동안
중앙정부 전폭적 지원으로 응답해야

 

국보 포항 중성리 신라비. /독자 제공
국보 포항 중성리 신라비. /독자 제공

◇ 포항시, 랜드마크로서 포항시립박물관 건립 준비 박차

최근 포항시는 시립박물관 건립에 대한 기초적인 방향 설정과 실천 전략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시는 그동안 과업 지시서 등 제반 서류 준비와 함께 박물관 기본구상에 대한 내부 협의 절차를 거쳐 여수, 영천, 창원 등의 타 지역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등 실무 검토를 마친 상황이다. 지난 2021년 11월부터 2022년 8월까지 포항시립박물관 기본계획 및 건립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실시했고, 지난 4월에는 박물관 조성 관련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효율적인 운영방안 등을 논의했다.

시는 이 수행 결과물을 중심으로 오는 7월 문체부 사전평가를 신청해 8∼11월 평가 결과에 따른 보완작업을 하기로 했다. 이후 포항에서 출토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라 비석 중성리 신라비와 냉수리 신라비 등 국보를 비롯해 서울과 대전, 경주 등 다른 지역 수장고에 보관 중인 문화재 수만 건을 모으는 한편 유물 구입·기증 공모를 통해 전시 유물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어서 2024년 박물관 건축·전시설계를 마치고 2025년 상반기에 건립공사를 착공, 오는 2026년 완공과 동시에 개관하겠다는 구상이다.

박물관 건립 사업은 도비 170억원(문체부가 경북도로 이관), 시비 190억8천만원 등 총사업비 476억8천만원이 투입되는 부지면적 1만5천㎡, 연면적 1만㎡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포항시는 지난해 포항시립박물관 건립을 위한 문화체육관광부 건립 타당성 사전평가에서 부적정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유물 확보 방안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둘째, 유물 편성 예산이 부족하다. 셋째, 전시 주제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박물관 건립 예정부지(당시 포항시 남구 동해면 일월리 연오랑세오녀테마파크 인근)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포항시는 지적된 사안을 보완하기 위해 ‘매머드급’ 자문단을 꾸렸다.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문화체육부 장관을 역임한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가 자문위원장을 맡고, 천진기 전 국립민속박물관장 등 전문가 13명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지난 4월, 1차 회의에서 박물관의 콘셉트 개발, 건축 방향 규정의 필요성, 특색있는 박물관을 위한 전시 방법과 콘텐츠의 중요성, 박물관 건립 추진 전담팀 신설 등을 제안했다.

현재 포항에는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적 특성을 드러내는 박물관으로서의 시설과 공간이 갖춰진 공립계 박물관이 없다. 포항시에 시립박물관이 조성된다면 지역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뿐만 아니라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국보 포항 냉수리 신라비 전경.  /포항시 제공
국보 포항 냉수리 신라비 전경. /포항시 제공

◇ 국보 2점 등 포항 출토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

포항에서 발굴된 문화재 수만 건이 지역에 보관 전시되지 못하고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다는 것은 지역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수치다. 국보인 포항 냉수리 신라비는 신광면사무소 앞마당 비각 안에 허술하게 보관돼 있다. 2009년 포항에서 발굴된 국내 최대 나무화석이자 천연기념물인 포항 금광리 신생대 나무화석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천연기념물센터에 들어가 있다. 포항 흥해읍에서 발굴돼 현존하는 신라비 가운데 가장 오래된 포항 중성리 신라비(국보)도 국립 경주문화재연구소에 있다. 포항은 지난 1995년 옥성리고분군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유물을 수습했고 이후 성곡리 및 호동 유적지 등 많은 조사를 통해 1만5천점 가량의 유물을 발굴했다. 그러나 수장고를 갖춘 박물관이 없어 발굴된 유물은 인근의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등지에 분산 소장돼 있다.

◇ 도시에 박물관이 건립돼야 하는 까닭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 수립= 박물관은 하나의 사회적인 인프라로서, 그 건물이나 유적지가 지역의 유형적 문화 자산인 동시에 지역의 자랑거리다. 자체 건축물 이외에 관련 도로나 주차 공간의 확충, 인근 녹지 확보를 통해 지역의 준사회간접자본의 시설로 존재한다. 동시에 지역성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전시물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역사적 삶의 증거로, 지역 주민들에게 강한 정체성을 부여해 준다. 박물관은 비공식적인 교육 기관인 동시에 지역문화의 중심체로서, 잠재적인 관람객과 지역 주민에게 시설과 공간을 제공해 다양한 문화행사와 활동을 용이하게 해준다. 또한 지역공동체의 주거환경, 서비스와 제조업, 도서관, 극장, 콘서트홀과 같은 문화공간을 총체적으로 묶어 문화 인프라 기반이 된다.

▲생활문화 공간으로서의 박물관= 박물관은 지역 공동체의 일상적인 삶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문화시설을 총체적으로 묶어서 발전시킬 수 있는 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행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지역민을 위한 사회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박물관이 대중들에게 일상생활의 연장으로서 다가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로 하며 박물관의 물리적 영역에 얽매이지 않고 대중과 좀 더 적극적인 만남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박물관은 지역문화의 요체로서 후원자 그룹, 자원봉사자 프로젝트 등과 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지역 공동체가 박물관 업무에 실질적인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국보 포항 냉수리 신라비.  /포항시 제공
국보 포항 냉수리 신라비. /포항시 제공

◇ 지역 문화재는 지역에 있어야 생명력이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고, 문화관광사업을 통해 지역발전 동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에서 지역박물관이 폭발적으로 건립되고 있다. 지역박물관은 지역문화의 보존센터인 동시에, 그 지역의 역사나 민속자료를 수집 보존 조사 연구 전시 보급함은 물론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표적 지역 문화시설이다. 지역박물관은 지역 연구 및 지역발전 실천의 장이며 지역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제대로 된 박물관 하나 없어서 소중한 지역 문화유산이 타 지역으로 보내져야 하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일 뿐만 아니라 중대한 모순이다. 박물관 건립과 함께 문화유산 되찾기의 당위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박물관 건립은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와 지역문화의 정체성 확립, 역사의 보고(寶庫)라는 측면에서 높은 가치를 갖는다.

◇ 중앙정부도 포항시립박물관 건립에 용단 내려야

포항시립박물관 건립 필요성은 2009년 중성리 신라비가 발굴된 이후 15년째 꾸준히 거론돼왔다. 청동기 시대부터 고려와 조선,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풍부한 문화유산에도 불구, 소규모 박물관만으로는 제대로 된 지역 역사 보존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포항의 국립박물관 유치·건립을 위한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포항시도 국립역사박물관을 비롯해 민속박물관, 해양박물관 등 각종 박물관 건립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면서 중복 투자 문제, 전시물 확보 어려움, 부지 선정, 예산 등의 문제로 모두 무산됐다.

포항시는 그런 실패의 경험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제대로 된 포항시립박물관 건립을 위한 절차를 빈틈없이 차곡차곡 밟아나가고 있다. 지역의 자존심과 결부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깊은 이해와 용단이 필수적이다. 포항시립박물관은 포항의 참다운 지방자치를 이끄는 민심의 중심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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