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역 출신 시인 30주기 추모
고인의 시 255편·산문 18편 엮어
문학전집 ‘감꽃과 주현이’ 출간

‘정영상문학전집 : 감꽃과 주현이’ 책 표지

“소나 돼지들의 똥과 오줌을
쓰라린 속으로 받아들이며
서로 끌어당기며 사는 것들
그리하여 쉬지 않고
오로지 썩는 일에만 몰두하여
겨울에도 뻘뻘 땀 흘리며
썩으면 썩을수록 더욱 정신 차려
논 밭으로 나가
쓰라린 속이 기쁨으로
열매 맺힐 때까지 사는 것들”

-정영상 시 ‘두엄’ 전문

순정하고 강고한 시정신을 보듬고 이 세상의 ‘열매’들을 위한 ‘두엄’ 같은 삶의 길로 나아갔던 정영상 시인. 1993년 4월 37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타계한 정 시인의 30주기를 추모하는 ‘정영상문학전집: 감꽃과 주현이’(아시아)가 출간됐다.

정영상 시인은 1956년 포항시 대송면 적계못 마을(남성동)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포항고교 시절부터 시와 인연을 맺었다.

국립 공주사범대학(현 공주대) 미술과를 졸업한 뒤 1989년 전교조 교사들의 대규모 해직사태 때 안동시 복주여중에서 해직돼 안타깝게도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시간을 맞지 못한 채 세상을 하직했다.

“아들로서, 지아비와 아비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미완에 그쳐버린”(이대환 작가) 생을 살고 떠난 고인은 시인으로서 생전에 두 권의 시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와 ‘슬픈 눈’을 펴냈고, 타계 후 유고 산문집 ‘성냥개비에 관한 추억’과 유고시집 ‘물인 듯 불인 듯 바람인 듯’이 출간됐다. 2003년 4월에는 공주대 교정에 ‘정영상 시비’가 세워졌다.

이 문학전집에는 정영상(1956∼1993)의 시 255편과 그의 희소하고 귀중한 산문 18편이 수록돼 있다. 독자와 정영상의 대화는 그의 고향 풍경·어린 시절을 짚고 넘어가야 독자가 그의 시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에 유고 산문집 제1부의 유년 이야기들을 맨 앞에 배치했다.

이어진 시편들은 시집 세 권의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 유고 산문집의 제2부에 모아둔 전우익 작가·신경림 시인·박원경 교사(정영상의 부인)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보낸 정영상의 편지들과 제3부에 모아둔 그의 단상들, 그리고 시집에 붙은 ‘시인의 말’과 ‘발문’은 수록되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권순긍 세명대 명예교수의 ‘정영상론’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정영상 시인.  /아시아 제공
정영상 시인. /아시아 제공

이미 오래전에 절판된 시집들과 산문집을 새로 디지털화해서 엮어낸 ‘감꽃과 주현이’출간에는 정영상 시인을 더 널리 더 오래 기억해야 한다는 고향의 선후배 몇 사람과 출판사 아시아의 뜻이 담겨 있다.

신경림 시인은 추천사에서 “글 어느 한 편을 읽어도 한 자 한 자 박아 쓴 장인의 손끝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는 본디 그림이 전공이기도 하지만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원고지 위에 글을 가지고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빠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귓가에서 소곤소곤 들려주는 것 같은 나무와 벌레와 작은 것들에 대한 섬세하고도 따뜻한 얘기들은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고 적었다.

엮은이 이대환 작가는 “서른 해 지나서 새로 읽어도 정영상의 작품들은 이 책에 실은 18편의 산문에 잘 나타난 그대로 타고난 순정의 논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년시절에 체화한 집안이나 이웃 농민의 빈궁 현실에 대한 쓰라린 애절과 직시의 고통, 그리고 교편을 잡은 1980년대의 독재와 억압에 대한 저항의지와 극복의지를 담은 시 255편은 타고난 순정의 논밭에 자라난 곡식들이다. 순정성, 이것이 사람 정영상의 진면모”라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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