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지인의 어린 딸아이가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애국’을 주제로 글쓰기 과제를 학교에서 받아 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해마다 쓰는 내용이 식상하기도 하고 도무지 쓸 거리도 없는데 매년 학교에서 그런 과제를 형식적으로 내니 애국은커녕 반감이 생겨 오히려 매국하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웃픈 이야기를 듣고서,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실 6월은 현충일을 비롯해 한국 전쟁, 제2연평해전 등이 모두 일어난 달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곳곳에서 온갖 행사가 행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며, 지극히도 무심히 6월을 보내는 일상 풍경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는 호국보훈의 달이라 하여 각종 행사에 형식적으로 물적, 인적 투자를 해 온 그간의 관례 탓도 있고, 또, 일반 범부(凡夫)로서는 국가를 위해 한 몸 바쳐 충성하고 희생한 이들의 삶이 너무도 고결하여 감히 근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심적 거리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무언가 큰 희생을 하는 것이 꼭 호국보훈이요, 충(忠)은 아니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이 합쳐진 글자로, 중심이 바로 잡힌 마음 상태, 지극하고 진심을 다하는 마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 즉, 국민의 국가를 향한 일방적인 희생, 의무를 강요하는 복종 개념이 아니라 어딘가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바로 잡고 선 상태, 하려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논어에서도 충(忠)을 ‘진기(盡己)’라고 표현하였다.

진기(盡己)는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다른 말로, ‘~답게’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모두 각자 처한 위치에서 이러한 ‘~답게’를 진정으로 잘 실천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君君臣臣 父父子子).‘~답게’가 잘 실천되는 사회, 곧 충(忠)이 제대로 실현된 사회일수록 ‘나’를 넘어 ‘너’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가 될 수 있는 법이다.

나폴레옹 점령 당시 총칼 대신 독일의 민족정신을 살리고자 독일어 사전 편찬 작업과 각지에 흩어져 있는 민담을 수집해 책으로 엮어내 세계 문학사의 한 획을 그어 놓은 그림 형제나 풍전등화 같은 국가적 위기 속 조선의 운명을 짊어지고 왜적과 고군분투하다 장렬히 전사한 이순신 장군, 독립투쟁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르고 대전 교도소를 나오며 이제 뭘 하겠느냐는 일본 경찰의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한 도산 안창호 등은 모두 학자, 장수, 독립투사로서 주어진 자리에서 ‘~답게’를 실천하다 간 인물들이었다.

이처럼 충(忠)은, 호국(護國)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답게’를 진실된 마음으로 올바르게 실천하다 보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라에 미치게 되어 마침내 충(忠)을 실현하고 애국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6월은, 다들 스스로를 돌아보며, 진정 ‘~답게’ 살며 나만의 애국을 실천하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