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

동쪽 바다에 가서

붉은빛 한 동이를

철철철 넘치도록 담아 왔네

해가 뜨지 않거나 꽃이 피지 않는 날마다

한 홉씩 꺼내어 마음의 정수리에 들이부었네

아무도 어둡지 않은 봄날의 찬란이었네

꽃에게 헌정한 마지막 황홀이었네

미소가 떠올려지는 동시에 어떤 슬픔도 느껴지는 시다. 동해 일출의 ‘붉은빛’을 담아 와서 “마음의 정수리에 들이”붓는다는 시의 착상이 미소를 자아낸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속에 담긴 붉은빛이 드러낸 ‘봄날의 찬란’은 ‘마지막 황홀’, 즉 곧 끝날 황홀이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어둡고 황량한 나날로 채워져 있는 것, 붉은 일출의 황홀한 ‘이미지-기억’을 마음에 들이부어도 어두운 일상은 다시 나타나리라는 슬픔.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