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술병처럼 자식에게 자신을 따라주다가 “속을 비워”가는 존재가 있다. 아버지다. 아버지는 가부장으로서 가족의 독재자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경우 자식을 위해 살다가 결국 쓰레기장에 ‘빈 병’처럼 굴러다니는 처지에 놓인다. 시인은 후자의 측면에 대해 말해준다. 자식들은 몰랐지만, 어느새 늙어버린 아버지는 ‘빈 소주병’이 되어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흐느끼’곤 한다는 것을 말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