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이제는 누가 와야 한다

산은 무너져 가고/ 강은 막혀 썩고 있다/ 누가 와서/ 산을 제자리에 놔두고/ 강물도 걸러내고 터주어야 한다

물에는 물고기 살게 하고/ 하늘에 새들 날으게 하고/ 들판에 짐승 뛰놀게 하고/ 草木과 나비와 뭇 벌레/ 모두 어우러져 열매 맺게 하고

우리들 머리털이 빠지기 전에/ 우리들 손톱 발톱 빠지기 전에/ 뼈가 무르고 살이 썩기 전에/ 정다운 것들/ 수천 년 함께 살아온 것/ 다 떠나기 전에

누가 와야 한다

소설가 박경리의 시집 ‘우리들의 시간’(2000)에 실린 시다. 기후 위기 등으로 생태 문제의 심각성이 강조되는 요즘이지만, 박경리는 예전에 이미 “수천 년 함께 살아온 것/ 다 떠나기 전에” “누가 와야 한다”며 절박하게 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모두 죽어 사라지기 전에 누가 와서 자연을 자연 그대로 존재하도록 되돌려야 한다는 것. 그런데 ‘누가’는 누구인가? 자연의 본성을 회복한 우리 자신 아니겠는가.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