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흙탕물이 흙탕물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

(…)

흙은 물을 만나 더러운 흙이 되는 게 아니다

물은 흙을 만나 흐린 물이 되는 게 아니다

흙탕물이 튀어서 내 마음이 더러워진 적은 없다

한때는 분노와 증오의 붉은 흙탕물이 되어

내가 썩어간다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흙탕물이 흙탕물 그대로 있는 게 아름답다

모내기를 끝낸 저 무논을 보라

물은 흙탕물이 될 때 비로소 흙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흙은 흙탕물이 될 때 비로소 물에서 모를 키운다 (부분)

흙 속에 잘 묻히기 위해서는 흙과 섞이는 것을 더러워하거나 “내가 썩어간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흙탕물에서 모는 자라난다. 흙과 섞여 있을 것, 흙과 계속 “서로 사랑하고 미워”할 것. 흙이 세상을 의미한다고 한다면 세상 속에서 그대로 살아나가는 것. 시인은 그것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깨끗하고 순수한 무엇에서 오지 않는다. 세상과 뒤섞여 세상의 비료가 될 때 아름다움은 발현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