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이

아이 손을 잡고 광장에 나가지 못한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해서

네가 죽어도 나는 살아야 해서

기약 없는 먼 훗날을 몽땅 끌어당겨서라도

지금 살아야 해서 촛불을 들 수 없는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

납땜 냄새 찌개 냄새 땀 냄새에 찌든 수척한 감정들이

운명처럼 들러붙어 빠져나가지 못하는

나는 파란색일까 까만색일까 붉은색일까

재갈 물린 길을 따라 무작정 걷는 여자의 시간

내가 여자를 입었는지 여자가 나를 입고 있는지

나를 찾아 출구를 더듬거리며 오늘을 걷고는 있다만

여자라는 시간은 제자리걸음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부분)

위의 시는 “지금 살아야 해서 촛불을 들 수 없”는, 광장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닥치는 일을 해야” 하는 여성들에 주목한다. 그녀들은 세상이 광장의 촛불에 주목할 때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사회는 그녀들을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처럼 취급하며 가시화하지 않는다. 각종 일을 하지만 존재성이 박탈당하고 있는 그녀들의 삶에 대해 시인은 “재갈 물린 길을 따라 무작정 걷는 여자의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