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본

가을의 말씀에는 은유가 없다.

은유의 꽃이 사라지고

은유의 잎이 떨어지고

은유의 뿌리였던

허기와 향기가 지워지고 나면

원색의 하늘만 남아, 침묵의 하늘만 남아

태초의 말씀,

허공 가득한 바람으로

그대의 한 생을 증언하고 있다.

인간의 언어가 은유를 통해 탄생하고 작동한다면, 은유가 지워진 언어엔 무엇이 남을까? 시인은 “태초의 말씀”인 ‘침묵’만 남는다고 한다. 은유의 꽃, 잎, 뿌리가 모두 사라지고 난 후 남는 건 허공과 그 허공을 가득 채우는 바람뿐이다. 우리가 저 푸르른 가을 하늘의 허공을 보았을 때, 태초의 말씀이 침묵을 통해 들려온다. 그리고 그 ‘하늘-침묵’은 바람처럼 허공을 지나가고 있는 “한 생을 증언”해주는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