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여기서 ‘계’는 10개의 천간 중 마지막으로 검은색에 해당하며, ‘묘’는 12개의 지지 중 네 번째 ‘토끼’를 뜻하기에 이 둘을 합쳐 올해를 검은 토끼해라고 한다.

토끼는 작고 귀여운 생김새에 놀란 듯한 표정 때문에 약하고 선한 동물로 종종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동시에 밤하늘 달 속에서 방아 찧는 신비스러운 존재, 새끼를 여럿 낳는 다산과 풍요, 자라의 꾐에서 빠져나오는 지혜의 상징 등 다양한 함의를 지녀왔다.

이 중 지혜의 상징으로서의 토끼는 문헌 상 삼국유사 열전 ‘김유신’조에, 고구려에 청병하러 간 김춘수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보장왕의 총신 선문해에게 청포 300포(布)를 뇌물로 바치자 선도해가 취중에 들려주었다는 ‘귀토지설(龜兎之說)’ 이야기가 꽤 유명하다.

이 외에도 사기 ‘맹상군열전’에 나오는 교토삼굴(狡<FA32>三窟) 고사도 빼놓을 수 없다. 영리한 토끼는 앞일을 대비해 미리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으로, 이는 맹상군의 식객, 풍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우선 맹상군을 위해 그의 돈을 빌린 설 땅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어 맹상군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들을 곁에 두게 했고, 둘째로 이웃 나라에 맹상군을 적극 추천한 뒤 다시 본국 제왕에게도 이를 알려 경쟁심을 부추겨 이전보다 더 후하게 맹상군을 기용토록 했으며 마지막으로 설 땅에 맹상군 선대의 종묘를 세워 민왕도 함부로 못 대하게 함으로써 맹상군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이처럼 영리한 토끼는 난세에 현명한 지략을 펼치는 법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끼가 이러한 지혜로움 때문만으로 숭앙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혜는 급변하는 사회 속 혼자 살겠다고 교묘한 계책을 쓰며 요리조리 잔머리를 굴리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들을 두고 우린 지능적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지혜롭다’고 하진 않는다. 지혜로운 현자(賢者)는, 바로 앞을 보는 혜안과 더불어 때에 따라선 자기 한 몸 희생할 줄 아는 그런 정신이 배어 있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정도(正道)를 걸어가면서 자기희생적 모습도 보여주기에, 뭇사람들의 존경과 숭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토끼는 그런 점에서 희생정신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금석물어집’에는 노인으로 변한 제석천이 원숭이, 여우, 토끼에게 먹을 것을 청했는데, 토끼만 아무것도 못 구해 오자 스스로 불 속에 몸을 던져 ‘나를 잡수시오’했고 이를 가상히 여긴 제석천이 토끼를 어여삐 여겨 달 속에 소생케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토끼의 희생정신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바야흐로 새해 벽두다. 이때쯤이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뒤로 하고, 누구랄 것 없이 다들 새해 소망 빌기로 한창이다.

올 한해는, 허울뿐인 계획들, 소망들이 아닌, 계묘년 토끼의 지혜와 희생정신을 새긴 알찬 한 해 계획을 한번 세워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