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정당’

프랜시스 매컬 로젠블루스
이언 샤피로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정치

신간 ‘책임 정당: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후마니타스)는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프랜시스 매컬 로젠블루스·이언 샤피로 두 저자가 현대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인 로버트 달의 전통을 이어받은 저자들은 ‘감사의 말’에서 이 책을 “통념을 반박하는 책”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은 문제의 진단과 대안에서 확실히 논쟁적이며, 현재 민주주의 정치에 불만이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시민에게 권력을 주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책임을 더한 ‘풀뿌리 분권화’가 오히려 유권자가 정치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키우는 역설에 주목한다. 여러 나라에서 시민에게 더 큰 결정권을 주고, 유권자와 조금 더 가까운 정치인이 선출되는 방식으로 개혁이 이뤄지고 있지만, 효능감이 떨어지고 신뢰도도 낮아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저자들은 “소규모 유권자 집단의 비위만 맞추는 일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협소한 유권자층에 빚진 정치인은 대다수 유권자에게 이로운 정책과 상충하는 근시안적 의제의 포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한국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세계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적으로 더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 이른바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고, 의사결정과 정치인에 대해 유권자의 직접 통제를 강화하면 민주적 책임성이 증가한다’는, 자명한 진리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반대 효과, 즉 오히려 유권자 소외 현상을 키운다고 주장한다. 비례대표제의 경우 유권자와 좀 더 가까운 정치인이 선출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증진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유권자가 정치에서 소외되는 현상 또한 극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또한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의 사례를 들어 제도 설계자들이 기대한 바와 다른 비례대표제의 취약성을 꽤 설득력 있게 지적한다. 사민주의 세력은 여러 개의 좌파 정당으로 분열되는 현상을 겪고 있고 좌파 진영의 분열은 비례대표제를 위험한 우파 포퓰리즘에 노출됐다.

저자들은 또한 비례대표제에서는 과격 세력이 자신들의 호소를 온건하게 조정할 유인이 적고, 대중을 극렬 소수와 고도로 양극화된 정치의 볼모로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예비선거를 시행하는 소선거구제와 마찬가지로, 비례대표제는 극렬 소수에 봉사하는 정치인에게 너무 쉽게 보답한다. 불만스러운 유권자들이 중도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강경한 해결 방안을 원하는 것은 다수대표제나 비례대표제나 같지만, 비례대표제에서는 그들이 의석을 얻는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결론 부분에서 “풀뿌리 분권화가 유권자 소외 현상을 키운다는 역설을 해결할 열쇠는, 정당이야말로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 기관임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과 책임성 있는 정강 정책을 놓고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할 수 있는 규율 잡힌 두 개의 정당(또는 선거 연합)을 만들어 내는 선거제도, 즉 영국식 양당제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민주주의 세계에서 증가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의 병리 현상을 진단하고, 유권자 집단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한 정책을 약속할 수 있는 규율 있는 정당, 내구성 있는 정당, 즉 책임 정당(정치)이 왜 필요한지를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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