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누구나 좋아하는 꽃과 나무가 있다. 나는 이팝나무꽃과 작약꽃 그리고 배꽃을 특히 좋아한다. 이팝나무꽃의 하얗고 풍성하며 우아하고 여유로운 자태와 그윽한 향기. 작약꽃의 은은하고 새침하며 깔끔한 자태. 배꽃의 화사하고 조화로우며 미끈한 형상이 정말 멋지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복숭아꽃과 배꽃을 천시하고 구박했는데, 그것은 꽃에도 인문적인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던 유자(儒者)들의 유난함 때문이었다.

나무 가운데서는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그리고 대나무를 좋아한다. 가정집에서 느티나무를 키우는 일은 격에 어긋나는 일이어서 단풍나무를 기른다.

화분에서 키우던 오죽(烏竹) 몇 그루와 산죽(山竹)을 마당에 옮겨 심었다. 단풍나무는 길이와 부피생장이 느긋한 편이다. 반면에 대나무는 감추고 있던 본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 저런 일이?!

어째서 사람들이 ‘쑥대밭’이라는 말을 쓰는지 알게 되는 참사(慘事)가 일어났다. 어디서 날아온 지 모르게 마당 일부를 점령하여 세를 키워나가는 쑥과 오른쪽 모퉁이에서 시작하여 마당 전체를 접수할 요량으로 번지는 대나무의 위세는 파죽지세(破竹之勢)였다. 쑥대밭에 가깝게 번지는 녀석들의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그들과 대적(對敵)하면서 ‘방아쇠 손가락’ 증후군까지 경험해야 했으니, 이쯤이면 전쟁이 따로 없었다.

올해도 쑥과 대나무는 푸릇푸릇하게 존재감을 발휘한다. 서책에서 조선의 선비들이 대나무 그림을 즐겨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인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춘하추동과 결부된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설중매, 여름의 무더위와 비바람을 견디는 난초,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국화도 대단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사군자 가운데 으뜸은 역시 대나무라고 한다.

곧게 자라는 강직함과 속이 빈 겸허함 그리고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지조와 절개를 선보이는 대나무야말로 선비의 표상으로 최고였기 때문이다.

국가가 경영하는 ‘도화서’의 화원을 선발하는 과거시험인 ‘취재(取才)’에 대나무, 산수, 인물, 영모(翎毛), 화초의 다섯 가지 종목이 있었는데, 대나무가 그 가운데서 으뜸이었다고 한다. 대나무는 선비사회에서도, 화원 집단에서도 가장 사랑받은 묘사 대상이었다.

조선 시대에 대나무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탄은(灘隱) 이정(1554∼1626)이었다. 세종의 고손자 이정은 왕족 출신 화가였다. 더욱이 그는 임진왜란 당시 오른팔에 왜놈의 칼을 맞아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정은 굴하지 않고 대나무 그림을 계속 그렸다. 그가 남긴 ‘풍죽도(風竹圖)’는 그야말로 대나무 그림의 압권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대나무의 형상화가 최고도로 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정의 그림은 바람이 균질하게 불지 않음까지도 포착하고 있다. 아, 저런 시선과 손길을 가진 화가가 실존했구나, 하는 크나큰 즐거움이 몰려온다. 그래도 마당에서 번성하는 대나무는 근절해야 한다는 다짐을 재삼재사 확인하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