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차고 건조한 겨울이 길게 이어지더니 마침내 봄이 왔다. 예년보다 늦게 피어난 꽃들은 무질서하게 몸을 활짝 열었다. 매화와 산수유, 살구와 목련이 필 무렵 사람들은 온통 벚꽃의 개화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벚꽃 환한 길이 역시 봄날의 장관이다. 하지만 일시에 사라지는 벚꽃은 허무의 극치를 선사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벚꽃이 더 매혹적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화사하고 장려(壯麗)하게 피어나는 꽃에만 눈길 주지 않는다. 작고 앙증맞은 녀석들도 땅바닥에 낮게 엎드린 채 피어난다. 봄의 전령인 봄까치꽃과 영춘화(迎春化)가 앞을 다투고, 그 뒤에 냉이와 씀바귀, 민들레와 제비꽃, 광대나물과 지칭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본디 크고 작은 것, 높고 낮은 것, 길고 짧은 것, 느리고 빠른 것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보는 차이가 있을 뿐!

나는 꽃보다 신록을 더 좋아한다. 팔조령을 넘으면서, 그리고 가창을 지나면서 만산에 우쑥우쑥 솟아나는 연초록의 봉기(蜂起)를 보노라면 생명의 약동과 환희가 절로 느껴진다. 아, 그래! 드디어 봄의 절정이 시작되었군, 하는 혼잣말 들린다. 어느 날 문득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시에 들이닥치는 신록의 무리는 손쓸 겨를도 없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온다. 문자 그대로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기세 그대로다!

여리되 강인하고 굳은 생명을 담은 신록의 봉기를 보면서 자연스레 우리가 8년 전에 속절없이 보낸 단원고 2학년 250명 아이가 생각난다. 그때 열일곱 살 아니면 열여덟 살이었을 그들, 그래서 살아있다면 지금 스물다섯 살 아니면 스물여섯 살이 될 그들이 시나브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 많은 여린 목숨이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났을 때 얼마나 망연자실(茫然自失)했던가?! 얼마나 무겁고 슬프고 처절하게 흔들렸던가, 우리 마음은!

야속한 강풍과 변덕스러운 빗줄기에 연초록 이파리들이 힘없이 스러지는 수가 있다. 비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수북하게 떨어져 있는 신록의 어린것들을 보노라면 한없이 안쓰러워진다. 예기치 못한 운명의 장난으로 불귀(不歸)의 객이 되어야 했던 상황과 결과에 곤혹스러워지는 것이다. 하물며 죽임의 대상이 된 주체가 어린 학생들이고 보면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냥 무연하게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말문은 콱, 막히는 것이다.

지난 봄에 스러진 어린 신록은 내년이면 다시 새록새록 돋아나올 터. 하지만 한번 가버린 250명 어린 생명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 이 자명한 이치 때문에 우리는 더욱 괴로운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부모 심사는 또 어떻겠는가?! 해마다 봄이 오면 그들의 저 깊은 흉중에서 울려 퍼질 고통의 메아리가 거대한 울림 되어 온누리를 가득 채우지 않겠는가!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는데도 아무것도 모른 채 “가만히 있어라!”라는 사악한 명령을 따랐던 아이들.

오는 6월이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활동 기한이 만료된다.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대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조속하고 적법하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