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마다 열리는 대통령 선거의 해가 밝았다. 올해는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1945년 해방 이후 19번의 공식·비공식이거나, 간접·직접 선거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은 이승만(1대~3대, 1948~1960), 윤보선(4대, 1960~1962), 박정희(5대~9대, 1963~1979), 최규하(10대, 1979~1980), 전두환(11대~12대, 1980~1988), 노태우(13대, 1988~1993), 김영삼(14대, 1993~1998), 김대중(15대, 1998~2003), 노무현(16대, 2003~2008), 이명박(17대, 2008~2013), 박근혜(18대, 2013~2017), 문재인(19대, 2017~현재) 대통령이다.

이 가운데 9명의 전직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은 감옥에 있으며,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은 며칠 전 특별사면됐다. 그러고보면 다사다난한 대통령 계보인 셈이다. 대통령 퇴임 이후의 생활이 만만치 않았던 것만큼, 대통령이 되기 위한 선거전 역시 치열했다. 경북매일에서는 신년을 맞아 역대 대통령 선거의 특이점을 살펴본다.
 

대선 3개월전… 19대 혼전·17대 독주·16대 지지율·결과 반전
15대16대 이회창 ‘병풍사건’ 등 ‘가족리스크’ 치명타로 작용
19대 15명 최대 경쟁률… 최저경쟁은 4대 윤보선 홀로 참가
최다 도전 4회 출마 김대중… 1, 2위 최다 격차는 17대 대선

□ 역대 대선, 3개월 전은 어땠나?

역대 대선에서 투표일 2~3개월 전의 지지율은 당선과 얼마나 상관이 있을까. 최근의 19대 대선 2달 전은 혼전의 양상이었다. 유력 여권의 대선 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레이스에서 하차하면서 ‘충청 대망론’을 공유하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여권의 대안 주자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의 지지율이 급등했다. 다만, 이 당시에도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굳건했다.

18대 대선 3달 전인 2012년 9월 19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39%를 얻어 각각 24%의 안철수, 문재인 후보를 제치고 있는 것으로 발표됐다. 당시 막 민주통합당 경선을 통과한 문재인 후보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작업에 착수한다.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독자가 눈에 띄던 3달 전이었다. 2007년 9월 26일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가 54.1%를 얻어 한 자리 숫자 지지율에 그친 정동영 후보와 손학규 후보, 문국현 후보, 권영길 후보 등을 큰 차이로 이기고 있었다.

16대 대선은 3개월 전 지지율이 최종 결과로 반영되지 않은 대선 가운데 하나였다. 16대 대선 3개월 전인 2002년 9월 22일 조사에 따르면, 이회창 후보가 31.3%를 얻어 30.8%의 지지율을 받은 정몽준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고 있었다. 3개월 후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후보는 16.8%였다.

1997년 15대 대선 3달 전의 여론조사에서는 김대중 후보와 이인제 후보, 이회창 후보가 각각 29.9%, 21.7%, 18.3%로 3강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어 조순 후보가 11.6%로 바짝 뒤쫒는 상황. 당시 이회창 후보는 아들의 병역 비로 의혹으로 지지율 정체를 겪고 있었으며, 이인제 후보 역시 경선 불복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이인제 후보의 경선 불목 문제는 차후 선거법 개정의 단초가 됐다.

□ ‘가족 리스크’, 역대 대선도 삼켰다

제20대 대선 레이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가족 리스크’가 주요 쟁점이다. 이재명 후보는 아들의 도박 문제로 고개를 숙였고, 윤석열 후보는 아내인 김건희 씨의 ‘허위 이력’ 문제로 발목이 잡혔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가족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해당 사안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유교사회인 한국에서 정치인, 특히 대통령에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여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를 주요 덕목으로 요구한다. 가족 리스크는 ‘제 가정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역대 대선에서도 후보의 ‘가족 리스크’는 결과를 흔들 정도의 주요 사항이었다.

특히, 1997년 15대 대선과 2002년 16대 대선에서 나왔던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에게 제기된 병역기피 의혹, 이른바 ‘병풍 사건’은 ‘이회창 대세론’을 단숨에 무너지게 했다. ‘대쪽 판사’의 이미지로 정계에 입문했던 이회창 후보는 ‘병풍 사건’으로 15대와 16대 대선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특히, 16대 대선 당시 이 후보는 6월부터 11월까지 줄곧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앞서고도 대선 승리를 놓쳤다. 노사모를 시작으로 한 노풍,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와 결렬 등 대형 이벤트가 있었지만, 치명타가 된 건 병풍이었다.

반면, ‘가족 리스크’에도 당선이 된 사례도 있었다. 재임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주인공이다. 문 대통령은 아들 준용 씨가 2005년 한국고용정보원에 취업한 것으로 취업특혜 공격을 받았다. 결론적으로는 준용 씨의 취업 절차엔 문제가 없었고 의혹도 사실이 아닌 걸로 확인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해명하는 과정에서 일부 거짓말을 한 게 문제가 돼 다시 도마에 올랐다.

□ 지역감정, 언제부터?

정치인들인 사적인 자리에서 “‘동서냉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영호남 갈등’”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한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가면 기름을 넣지 못한다’거나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에 가면 밥을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양 지역에서 자란 사람이 늘상 듣던 소리였다.

물론 2천년대를 넘어서면서 지역감정에 기반한 힘은 많은 부분 약해졌다. 민주당 출신 홍의락 전 의원과 김부겸 국무총리가 대구에서 당선된다거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이정현 전 의원이 호남에서 금뱃지를 단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 구도’는 선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은 호남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PK를 공략하는 동진 정책을, 국민의힘은 TK와 PK의 인구적 우위를 앞세운 전략을 구사해왔다.

탄핵 직후 치러졌던 19대 대선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위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15% 이상 앞서면서 승리를 거뒀다. 이에 홍준표 후보는 ‘동남풍’ 전략을 가지고 나왔다. 부산과 경남에서부터 대구와 경북을 거쳐 수도권까지 지지세를 확산하겠다는 의도였다. 물론 동남풍은 미풍에 그쳤다.

박빙이었던 18대 대선은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의 진영선거로 치러졌다. 중도의 마음을 잡기보다는 어느 진영의 지지세를 더 끌어올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결과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천577만여 표(51.55%)를 얻어 1천470만여 표(48.02%)를 얻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108만 표(3.53%) 차이로 이겼다. 박 후보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대구와 경북이 단단하게 결집했기 때문이다. 호남에서 보수정당 후보로 처음으로 10% 이상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주효했다.

□ 역대 최다 경쟁률 및 최대 출마는?

역대 대선의 경쟁률과 갖가지 기록은 어떻게 될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역대 대선 최대 경쟁은 15명이 출마한 19대 대선이었다. 물론 2명이 중도사퇴하고 13명이 완주했다. 이전까지는 2007년 치러진 17대 대선이 가장 치열했다. 12명이 출마해 12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것이다. 반면, 가장 경쟁률이 낮았던 선거는 언제일까. 윤보선 전 대통령이 홀로 참가했던 제4대 대통령 선거였다. 당시 대통령 선거는 1960년 8월 12일 민의원과 참의원의 합동회의에서 양원 의원들의 간접 선거로 치러졌다.

직선제 대선 최다 도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유하고 있다. 1997년 대선까지 4회 출마로 1위를 기록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3회로 뒤를 이었다. 이회창, 권영길 후보도 당선은 되지 못했지만 3회 도전을 했다.

역대 대선에서 1, 2위 후보 간 격차가 가장 많이 벌어진 선거는 17대 대선이었다. 이명박 당선자가 48.7%, 정동영 후보가 26.1%를 각각 득표해 두 후보 격차는 22.6%(531만 표 격차)였다. 역대 당선자 득표율은 4대 직선제가 3·15 부정선거로 무효화된 점을 감안하면 2대 이승만 대통령이 얻은 74.6%가 가장 높았고, 13대 노태우 대통령이 얻은 36.6%가 가장 낮았다. 무효가 되면서 선거 횟수에서는 삭제된 경우지만 4대 직선제 선거는 투표율 외에 사상 최고 득표율과 최저 경쟁률도 기록했다. 이승만 후보의 경쟁자였던 조병옥 민주당 후보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이 후보가 단독출마해 유효투표의 100%(유권자 총수의 86%)를 얻었다. 역대 대선에서 직선제 선거는 이번 19대를 제외하고 12차례였고, 간선제 선거는 7차례 실시됐다.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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