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학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 대학 신임 교수가 발표를 하고, 그에 대해 그 분야의 베테랑 교수가 지정 토론자로 나서서 학문적 대화를 이어가려 할 때였다. 누가 보아도 급하게 쓴 원고였건만, 오히려 토론을 맡은 교수는 발표자를 최대한 배려하여 매우 정중하고도 부드럽게 질문하는 게 참 인상적이라 느낄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발표자가 목소리를 크게 높이더니, 핀트에 어긋난 데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으니, 이에 자신감을 얻어, 오히려 발표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그 무례함과 반쪽짜리 지식에 혀가 내둘릴 정도였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은 “소수의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을 항상 속일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얕은 지식과 기술로 잠깐 그 순간을 모면하고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통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영원할 수가 없다.

우리말에 ‘반거충이’라는 말이 있다. 배움을 중도에 그만두어 다 이루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사실 등급이 있다. 어느 하나도 제대로 배움을 못 마친 것은 같지만, 그렇기에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언제나 겸손하며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상급의 반거충이요, 부족함을 알지만 그럭저럭 만족하며 사는 이들은 중급의 반거충이며, 스스로의 부족함도 모른 채 반만 아는 것을 전부 아는 양 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 하는 삼척동이는 하급의 반거충이다. 행색이 비루해 바보라고 놀림 받았지만 우직하게 노력해 멋진 장수가 된 고구려의 온달은 상급의 반거충이며, 시골 양반 행색이 초라하단 이유로 무시하다 언문풍월 내기에서 된통 당한 ‘요로원야화기’의 서울 양반은 하급의 반거충이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반거충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하급 아닌 상급이 되게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조 재상 맹사성이 젊어서 파천 군수로 부임했을 때이다. 자만심이 대단했던 그가 하루는 한 고승과 차를 마시던 중, 차가 잔에 흘러넘치게 되었다. 이에 화를 내니 고승은 차가 넘쳐 바닥을 더럽히는 건 알면서 학식이 넘쳐 인품을 더럽히는 건 왜 모르냐고 도리어 얘기했다. 또 급히 방을 나가려다 문 위에 머리를 부딪히니 고승이, 고개를 숙이면 매사에 부딪힐 일 없다는 말을 더하였다. 그제야 맹사성이 크게 깨닫고 정진해서 후에 존경받는 청백리가 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겸손을 모르던 하급 반거충이에서 상급 반거충이로 거듭난 예이다.

그렇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며 산은 높을수록 골이 깊어지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 주변에는 하급 반거충이들이 득실댄다. 평생을 이렇게 ‘척’하는 인생으로 살다가 마지막에, 미국의 작가 루이스가 말했듯, ‘할 수도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라고 후회한들 너무 늦지 않겠는가.

바야흐로 12월이다. 이왕 인간사가 반거충이 인생이라면, 올 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 한번쯤은 내가 어떤 반거충이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