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30주년 맞은 "대구 구병원"

지난 15일 개원 30주년을 맞이한 대장항문 특성화병원 구병원 전경. /구병원 제공

대구 구병원(병원장 구자일)은 지난 1991년 구외과의원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 서울에서도 힘들다는 외과 개원을 대구에서 하면서 주변에서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이같은 우려를 불식하고자 구병원은 대장·항문질환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른 서구식 식습관으로 대장항문질환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이같은 전략은 적중했다.

개원과 함께 구외과의원은 성장을 거듭해 5년 후인 1996년에는 의료법인의 11개 진료과 211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6월 15일자로 개원 30주년을 맞은 구병원은 현재 외과 전문의 14명을 비롯해 34명의 의료진이 함께 하고 있다.
 

한 해 평균 6천례 이상 수술 소화하며
2019년엔 누적 수술건수 10만례 돌파

‘원형자동봉합기’ 활용한 치질수술은
통증은 10분의 1·치료기간 짧은데다
재발 확률 낮아 해외의료진 연수 줄이어

공휴일·야간에도 외과전문의 집도 가능
촌각 다투는 응급환자 치료 소임 다해

구자일 병원장 “필수의료 책임지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제도적 지원 절실한 상황”

□ 수술과 실적으로 말하다

대한외과학회는 최근 대장항문, 초응급 외과 수술 전국 의료실적 1위로 구병원을 소개했다. 특히 구병원의 대장항문 분야 수술 실적은 가히 독보적이다. 서울에서도 치질 수술을 받기 위해 찾는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구병원은 해마다 대장·항문 관련 수술을 6천례 이상을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 2019년 11월 누적 수술건수 10만례를 돌파했다. 코로나19가 심각했던 지난해에도 구병원은 수술을 6천300례 이상 성공했다.

수술 건수 뿐만 아니라 대학병원과 협력해 국제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는 등 술기(術技)에서도 지방 중소병원 수준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 의료진들에게 우리나라의 우수한 술기를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환자 뿐 아니라 의료진들도 해외에서 연수를 받으러 구병원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구병원을 거쳐 간 해외 의료진들만 일본, 대만 등 18개국 수백명에 이른다.

이들 해외 의료진들이 구병원을 방문해 배우는 술기는 ‘원형자동봉합기(PPH)’를 활용한 치질수술이다. 구병원의 스타일이 반영돼 ‘구병원 방식’으로 불리는 이 수술법은 기존 수술에 비해 통증은 10분의 1 수준이고 치료 기간도 짧다. 무엇보다 재발 확률도 낮아 치질 수술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으로 대표되는 염증성 장질환 분야에서도 구병원의 활약은 뛰어나다. 염증성 장질환은 잦은 수술과 지난한 관찰이 필요해 다수 대학병원들도 기피하는 질환이지만 구병원은 오히려 더 적극적이다.

지금까지 치료한 환자만 크론병원의 경우 500명, 궤양성 대장염은 2천명에 달한다. 이를 기반으로 대학병원 의료진과 공동으로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배변장애 역시 구병원의 존재감이 절대적이다. 별도의 협력팀을 구성해 출구폐쇄형변비, 변실금, 직장탈출증, 자궁탈출증 등 배변장애 질환 치료에 새지평을 열고 있다.

특히 구병원 의료진이 개발한 ‘MRI 배변조영술’ 검사는 골반 근육과 장기, 인대의 움직임과 배변 기능을 역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해외 학회의 의료진 연수 프로그램도 구병원이 가진 ‘달란트’중 하나다. 구병원은 매년 가까운 아시아에서부터 멀리 유럽까지 해외에서 진행되는 다수 관련 학회에 의사 2∼3명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학회에 참석한 의사는 없었다. 술기 발전을 위한 아낌없는 투자가 의사와 환자 나아가, 병원 모두에게 선순환 구조를 이뤄내고 있는 모습이다.

덕분에 구병원의 부원장급 의사 근속 연수는 20년 이상이다. 일반 의사의 근속 연수 또한 10년 이상으로 매우 안정적인 직장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구자일 병원장은 “개원의도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해 왔다”며 “여러 성과는 이같은 흔들림 없는 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 24시간 병원 불을 밝히는 이유

대학병원 등과 달리 촌각을 다투는 환자 치료를 위해 구병원은, 전문의가 24시간 대기하며 바로 수술이 가능한 응급실을 운영 중이다. 무엇보다, 외과병원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이유도 크다.

사실, 응급실 운영에 대한 구자일 병원장의 애착은 지난 2010년 하반기 강하게 솟구쳤다. 대구에서 4세 여아가 장중첩으로 사망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여아는 대구지역 주요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응급실을 전전했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고 끝내 사망했다.

구병원도 당시 응급실을 운영 중 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구병원은 찾지 않았다고 구자일 병원장은 자책했다. 이후 구병원은 지역 응급의료기관, 응급수술 지정병원 등에 지정되는데 이는 당시 여아 사망과 무관하지 않다.

난이도가 매우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구병원이 야간 및 공휴일에 진행하는 응급 수술 건수를 보면 구병원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있다.

구병원은 지난 2019년 급성충수염 257건, 담낭염 44건, 복막염 18건 등 총 423건의 응급수술을 진행했다. 야간, 공휴일에 진행된 응급수술 건수로 여기에 평일 응급수술까지 포함한다면 전체 응급수술 건수는 1천건에 육박한다.

이렇듯 응급실 운영이 가능한데에는 야간, 휴가 중에도 전화만 하면 언제나 흔쾌히 달려와 주는 외과 전문의 14명의 존재가 있어서다. 정진석 진료부원장을 포함한 다수 의료진이 오직 환자만을 위해 응급수술 당직을 자청하고 있다.

병원 내부에서는 병원 측의 실적압박이 전무한 점이 응급실 운영의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구자일 병원장은 “병원이 의사들에게 실적을 강요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최선의 진료가 최상의 경영이라는 신념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생명의 보루 응급실에 정부 지원 이뤄져야

이처럼 생명의 보루인 응급실 운영에 힘을 쏟고 있지만, 지속적인 응급실 운영적자는 병원 측에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현행 제도 하에서 공휴일이나 야간 응급 수술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구병원 또한 적은 마진을 고스란히 응급실 운영에 쏟아 붙고 있다.

사실 현행 제도 하에서 공휴일이나 야간 응급수술은 ‘적자’가 불가피하다. 나름의 가산수가가 적용되지만 현실과는 확연하게 동떨어진 수준이다. 구병원은 수술로 어렵사리 발생시킨 수익을 고스란히 응급실 운영에 재투입하고 있다. 여타 지방 중소병원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에 대해 이우용 대한외과학회 이사장은 “정부가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외과병원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며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외과병원들의 상황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운영돼야 하는 응급실이 의료수가 문제 등으로 문을 닫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자일 병원장은 “외과병원의 소임이라는 생각과 자부심으로 응급수술을 시행하고 있지만 영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며 “병원이 돈을 내면서 생명을 살리는 구조가 과연 정상적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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