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대수필가
윤영대
수필가

춘천시 중도의 선사유적지 훼손에 대한 뉴스를 듣고 포항의 선사유적이 생각나 칠포리 암각화를 둘러보고 싶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무려 6개 구역 16개 바위에 96점 암각화가 있단다. 이 칠포리 암각화는 1989년 처음 발견된 이후 추가로 찾아내어 우리나라 최대 암각화군을 이루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등록되어 있다. 분포도를 보니 모두 십 리 안팎의 거리에 모여 있어 하루 만에 다 답사할 수 있겠다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

맨 먼저 간 곳은 도로변 사다리꼴 암각화. 조용히 둘러보고 근처 A구역으로 갔다. 커다란 표지판이 서 있는 곳에 주차하고 숲으로 올라가니 암각화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깨끗한 돌길과 아치형의 나무다리를 건너면 눈에 들어오는 큰 바위 하나, 멀리서도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검파형 암각 6개가 선사시대로 나를 이끈다. 원시 부족 때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며 새겼을 암각이 연약한 사암질의 바위 표면에서 비바람에도 잘 버티어주었구나 하며 꼼꼼히 둘러보았다. 바로 아래 좁은 계곡에 비스듬히 박혀있는 바위에는 큰 검파형 암각이 있어 가지고 간 줄자로 위아래 면의 크기와 높이도 재보았다. 갑자기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다.

전 세계 고인돌의 40%가 존재하는 우리 한반도, 그곳에 암각화가 가장 많은 포항 칠포에서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암각화를 직접 보며 그 가치를 되새기는 즐거움은 크다. 부근의 넓은 바위에도 암각화가 있는데 나에게는 잘 보이지를 않았다. 도판 하나를 그려두었으면 좋을 텐데…. 입구에는 인물상도 있다는데 표지도 없고 주민에게 물어도 모르겠다고 한다.

다음은 바다 쪽 B구역, 길 한켠에 주차하고 입구 표지를 찾았으나 없다. 답답한 마음에 곤륜산 정상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오르려고 가보니 입구에는 주차장이 있고 시멘트 포장길이 잘 닦여져 있다. 정상에서 보니 칠포 앞바다와 흥해 벌판이 시원스럽게 가슴에 들어온다. 내려와서 물회 한 그릇 먹고 주인에게 물었더니 바로 길을 건너 올라가면 된다고 가르쳐 준다.

길 건너에는 펜션과 카페의 간판은 요란한데 암각화 표지판은 없다. 눈치껏 숲을 헤쳐가니 긴 바위가 누워있고 설명판 2개가 서 있다. 일반적 설명뿐이라 바위 위를 오르내리며 겨우 윷판 모양과 인물화를 찾았다. 그리고 아래 삼거리의 작은 팻말을 따라 제단바위를 찾아가서 많은 성혈을 헤아려 보고 아랫마을의 원형점 군락을 찾았더니 주민도 잘 모른 체 쓰레기에 덮여있다.

우리나라 제일의 암각화군을 둘러보기가 참으로 힘든다. 나머지를 포기하고 신흥리 오줌바위를 찾아가도 입구 팻말이 없고 인적도 드물어 겨우 주민에게 길을 물어 오르니 넓은 바위 위 별자리 성혈이 피곤한 몸을 달래준다.

암각화를 한나절에 다 찾아보겠는 생각은 꿈이었나보다. 입구안내판도 없고 주차할 곳도 마땅찮고 주민도 잘 모르는 칠포리 암각화군, 그 문화적 가치를 가볍게 보는 허술한 관리가 염려된다. 암각화 주위에 어지럽게 새겨진 낙서들로 보아 그 훼손이 두려워 표지판을 두지 않았나? 칠포리 암각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도 될 가치가 있을 듯한데 기억 속에 묻히는 암각화(暗刻畵)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