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산고 끝에 시장이 선출되었다. 선거과정에서 세대와 성별, 직업을 씨줄과 날줄로 살피며 투표성향을 예측하곤 하였다. 특별히 주목을 받는 연령층이 두드러졌다. 20대와 30대. 청춘과 낭만의 한 가운데를 달릴 것이라 여겨져서 늘 꿈틀거림과 변화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는 인생의 계절을 지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통상 미래를 내다보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며 문화적으로도 사회의 변화를 이끌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아도 창창한 미래를 내다보며 사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세대라 생각하였다. 그런 그들이 바뀌었다고 한다. 진보에서 출발했던 그들의 현주소가 중도마저 냉큼 건너 보수를 향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그들에게 이념은 죽은 물건이다. 21세기 디지털과 나노, 광속과 초연결의 세계에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낡아빠진 쓰레기더미와 같다. 어떻게 사람이 한 가지 통념에 주소를 정하고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좌표를 가질 수가 있다는 말이냐. 시시때때로 바뀌며 헤아릴 수 없는 부침을 거듭하는 시대의 역동성을 구세대는 도대체 알기나 하는지. 보아하니 당신들이 쌓아 올린 기득권적 가치에 매몰되어 구시대적 경쟁과 허무맹랑한 말싸움이나 거듭하는 건 이쪽도 저쪽도 마찬가지인 걸! 지난 시절에 겪은 역사나 되뇌이며 ‘너희들은 모르는’ 엄청난 이념과 가치라도 가진 듯 휘두르는 건 그냥 허세와 허구였음이 거의 판명되고 있는 걸. 오늘 20대와 30대는 목이 마르다. 이념과 사상에 굶주린 게 아니라 꿈과 희망에 목이 마르다.

민태원이 ‘청춘예찬’에서 젊은이의 특권이라 노래했던 이상(理想)은 생각도 해 보기 전에 불편과 궁핍이 떠오른다면 그 어느 이념과 가치가 그들을 붙들어 맬 것인가. 오늘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겐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는 이생망이며 헬조선이었는데 이제는 ‘영끌’과 ‘빚투’가 목을 조인다. 그러니 앞에 선 누구도 맘에 들 까닭이 없으며 청년을 위한 정책에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목을 축이는 몇십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기대하며 달려갈 미래를 보여달라는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가. 그들이 보수로 돌아선 듯 보이는 저 움직임은 이념을 거부하겠다는 최후통첩이 아닐까. 실용과 즉답으로 가득한 세상에 에둘러 표현하는 불편함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닌가. 정치와 문화, 경제와 사회는 이 땅의 젊은이들을 생각이나 하는가.

용감하게 선거에 나서 시장에 선출된 이들에게 축하하기에 앞서, 오늘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다음 선거에나 관심이 있었다거나 시장직은 징검다리였다는 조짐이 보인다면, 우리는 어김없이 당신을 저주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 뽑아준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충실한 공복이 되어, 도시민 모두를 위한 맨 아랫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시라. 당신에게 표를 모아준 젊은이들을 꿈에도 잊지 않는 시장이 되어 약속대로 멋진 도시를 만들어 주시라. 20대와 30대가 세우는 도시를 기대한다. 젊은이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