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몸이 안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변호사로 이미 명성을 얻은 ‘친구’가 소설을 써냈다. 그냥 소설도 아니고 미래소설, AI가 사람을 죽이는, 문제적인 이야기다.

이런 바쁜 세상에서 소설을 쓴다는 건 쉽지 않고, 그것도 시대의 추세를 앞서가는 것도 쉬운 일 아니다. 나 역시 소설을 쓰지만 낡은 시대의 끝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합정동에서 망원동 가는 쪽에 있는 전라도 음식점으로 서둘러 향했다.

식당에는 이 장편소설을 펴낸 솔출판사의 임 선배가 이미 와 계셨고, 표지를 그린 오 선생도 함께 합석을 했다. 수년 동안 늘 둘이서만 술을 마시다시피 한, 평론가 이 후배도 미리 와 있다. 섬세한 그가 책을 출간한 작가를 위해 사 온 프리지아 꽃다발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좋은 모임이지만 나는 우리가 모두 나이가 들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이 평론가가 나보다 11년 후배나 되고 그래도 벌써 사십 대 후반에 접어들었으니 ‘세상’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나온 셈이다. 무슨 이야긴가 끝에 임 선배가 세상에는 ‘나’하고 관계 없는 세대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즉각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솔출판사는 최근에 카프카 전집을 내고 버지니아 울프 전집을 냈는데,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젊은 세대란 없다시피 하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세상’을 이루고 있다. 웹툰이며 웹소설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고, 이런 작품들이 영화가 된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때가 있었다. 벌써 16,7년이나 된 일이다. 모교에 와서 첫날 강의에 들어간 나는 예기치 않게 심중에 담아 놓은 이야기를 토설하고 말았다. “저는 여러분 세대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의 세대의 사연을 그대로 보따리째 싸들고 그냥 살아가다 홀연히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어떤 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관해 ‘세상’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 책 중에 ‘나의 에고이즘’이라는 것이 있어 꼭 나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도, 나는 사실은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임 선배처럼 나도 나와 관계없는 세대와 ‘함께’ 호흡하며, 한때의 신조를 어기고 때때로 그들에게 나의 세대의 사연들을 노출하고 만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은 세대에서 세대로 경험과 기억을 이어주고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고. 많은 것이 그러는 사이에 잊혀지고 놓쳐지고 거부된다 해도, 그렇게 사람의 삶은 연결되는 것이라고.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