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개강을 했어도 직접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없다. 수업을 세 개를 해도 학생들을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 일은 없다고 해야 한다. 수업 시간에 맞추어 ‘줌’ 회의를 개설하는 예약을 해두고, 인터넷으로 학생들에게 회의 주소를 알려주는 문자를 보내고, 수업 시간이 가까우면 줌 회의를 열어두고 학생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학생들 수업만 그런 게 아니라 각종 회의도 직접 만나서 하는 일은 손꼽을 정도다. 학생들과 같이 하는 개강 모임은 처음부터 문제가 생길까 아예 ‘비대면’으로 전환해서 화상으로 학생들을 만나도록 한다.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뭔가 의논을 할 때도 한 번도 직접 모여서 한 일은 없는 것 같다. 학교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따질 것 없이 ‘줌’ 회의에 접속만 되어 있으면 만나 오케이다.

하루 이틀 아닌 코로나 시절이다 보니 이제는 ‘비대면’이 일상이 되고, ‘대면’은 아주 이상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집밖이 무서워져서 가급적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황사나 미세먼지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어느새 사람에 대한 공포증이 생긴 건지, 아니면 사람 관계에 대해 어느새 서먹해져 불편함을 느끼는 건지, 외출하는 일이 무슨 큰 모험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뭔가 약속을 만들려면, 바깥나들이를 하려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렇게 나가도 되는 건가 하는 두려운 기분이 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화장실 벽에 걸린 장에 수건을 넣다가 그만 조그만 샴푸 병이 변기로 또르륵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불러 고쳐야 할 일이 생겼다. 내 손으로 손수 건져낼 수 없이 보이지 않는 아래로 숨어버린 것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 전화 저쪽 사람은 ‘석션’이라는 것을 하면 나오는 수가 있다 한다. 밤에 약속을 정하고 아침이 되어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어디서 솟아나는 불안감인지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조여드는 것 같은 느낌은 낯선 사람을 너무 오래 안 만나서인가?

그러다 이것은 분명 병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가까운 사람도 제대로 만나 시간을 보낸 적이 별로 없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나누지만 돌아서고 나면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런 식으로 또 한 학기가 가면 이제는 정말 마음이 병들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무서운 마음이 든다. 나는 원래 낙천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이 꽉 죄어들어오는 갑갑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일은, 아니면 모레라도 꼭 산에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세상을 다른 기분으로 살아보고 싶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